윤종원 기업은행장이 임명 열흘이 넘도록 은행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외부를 돌고 있다. ‘낙하산 인사 반대’를 내건 노동조합의 출근 저지 때문이다. 수십 년간 낯익은 광경이 핀테크 혁명으로 금융산업의 새 판이 짜인다는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
정부든 어디든 주주의 정당한 인사권이 존중돼야 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기업은행장 인사도 마찬가지다. 다만 지금의 집권 여당이 야당시절 같은 기업은행장 인사를 두고 똑같은 ‘낙하산’ 논리로 강하게 반대했던 사실을 돌아보면 노조의 반대논리를 정부·여당 스스로 제공했다는 측면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기업은행 대주주인 정부의 인사권 행사가 노조에 의해 도전받는 것은 볼썽사나운 풍경이다. 더구나 윤 행장은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과 경제수석, 국제통화기금(IMF) 상임이사 등을 지내 금융에 전문성이 없다고 할 수도 없다.
정작 주목해야 할 것은 기업은행 노조가 ‘은행장 길들이기’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외부 출신 ‘낙하산 반대’ ‘관치배제’를 외치면서도 결국은 노조의 이익을 챙긴 뒤 슬그머니 저지와 농성을 풀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식으로 4차 산업혁명의 와중에도 은행점포들이 살아남았고, 생산성 논란에도 은행원들의 급여가 다락같이 올라갔다. 윤 행장이 행장실로 들어가기 위해 노조와 어떤 ‘뒷거래’나 부당한 약속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랬다가는 기업은행뿐 아니라 전체 금융산업까지 퇴보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한국 금융이 아프리카 저개발국보다 못하다는 평가가 왜 나오는지 모두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해묵은 첩첩 규제와 편 가르기 인사, 금융노조의 오랜 기득권 챙기기, 감독당국의 무기력, 이 네 박자가 겹친 탓 아닌가. 하루하루가 절박한 중소기업과 중소자영업체들 현실을 보면 행장 부임을 둘러싼 다툼에 매몰될 만큼 기업은행의 영업과 경영 현실이 여유롭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