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수입승용차 시장에서 메르세데스-벤츠가 점유율 30%를 넘기며 독주 체제를 구축했다. 타깃층 확대를 위해 디자인을 젊게 만든 E클래스 모델이 실적 성장을 이끈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벤츠 E클래스는 국내에서 총 3만9782대 팔리며 수입차 베스트셀링카에 올랐다. 이는 기아자동차 K5 3만9668대, 현대자동차 투싼 3만6758대, 한국GM 스파크 3만5513대, 쌍용자동차 티볼리 3만5428대 등 국내 완성차들의 주력 모델보다도 많이 팔린 수치다.
E클래스는 3만5136대가 팔렸던 2018년과 비교해서도 지난해 판매량이 13.2% 증가했다. 세부 트림으로 살펴보면 E300과 E300 4매틱이 각각 1만3607대, 1만259대를 기록해 나란히 지난해 베스트셀링카 1·2위를 차지했다.
이로써 E클래스는 2016년 출시 이후 3년 만에 누적판매 10만대를 돌파하며 4년 연속 수입차 1위 기록을 달성했다. 벤츠는 E클래스의 인기에 힘입어 지난해 총 7만8133대의 판매량을 기록, 전년대비 판매량이 10.4% 증가하며 '역대급' 실적을 달성했다.
E클래스 판매가 증가하자 온라인에는 E클래스 동호회 회원수도 14만3000명을 넘어섰다. 검색 포털에서는 '벤츠 뉴E클래스 정보 공유를 위한 모임 카페'가 지난해 포털 대표 인기카페로 선정됐다. 회원들은 송년모임과 사회활동을 하면서 E클래스 소유주로서 목소리를 강화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내 한국 시장의 중요성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올라 칼레니우스 다임러 AG 및 메르세데스-벤츠 AG 이사회 회장은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국제가전박람회) 2020 기자간담회를 통해 한국에서 벤츠가 독주하는 상황을 언급했다. 그는 "고급차를 선호하는 한국 소비자들은 벤츠의 럭셔리 제품을 좋아한다"며 "우리의 공격적인 제품 포트폴리오 강화가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대표를 지낸 바 있는 브리타 제에거 다임러 AG 이사 및 메르세데스-벤츠 승용부문 마케팅&세일즈 총괄은 "한국에서 판매량 7만~8만대는 상상못한 수준"이라며 E클래스가 주도한 실적 성장에 놀랐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E클래스의 인기 요인으로는 디자인 중심의 상품성 개선이 꼽힌다. 혁신적 디자인으로 타깃층을 두텁게 만들었다는 평가다. 기존 E클래스는 성공한 중년 남성들이 타는 차의 이미지가 강했다. 실제로 과거 벤츠는 E클래스의 주 타깃층을 50대 이상 남성으로 설정해 마케팅도 그에 맞춰 진행했다.
하지만 9세대와 10세대로 진화하면서 E클래스는 40대, 넓게는 30대로 타깃층을 확장했다. 디자인도 웅장함보다는 세련미와 도시 스타일을 강조해 디자인이 젊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트림을 대폭 확장한 것도 주요 요인이다. 가장 대중적인 E300을 비롯해 E300 사륜구동 트림 4매틱, 디젤 E220d으로 세분화했다. 판매량은 순서대로 각각 1만3607대, 1만259대, 4246대에 달했다.
여기에 지난해 11월 국내에 출시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제품 E300e의 막판 활약이 컸다. 친환경 세단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면서 E300e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커졌고, 이 분야에 강세를 보이던 렉서스 등이 일본차 불매 운동으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벤츠가 반사이익을 봤다. E300e는 지난달 880대를 등록해 E250 다음으로 많이 팔린 E클래스가 됐고 출시 후 두 달만에 1516대를 팔아치웠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BMW는 화재, 아우디는 디젤게이트, 렉서스는 반일감정 등 최근 수년간 벤츠의 경쟁사들이 한국에서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며 "이들의 잠재적 소비자가 유사한 비용으로 구매 가능한 라인이 벤츠에서는 E클래스"라고 분석했다.
이어 "제네시스 등 국산차도 가격이 많이 높아져서 조금만 보태면 E클래스에 근접할 수 있기 때문에 가격 폭이 좁아진 것도 E클래스의 판매량 증가를 보탰다"며 "올해 BMW나 아우디에서 경쟁 차종을 강화한다고 하지만 E클래스도 신모델 출시가 예정돼 있어서 지난해보다 판매량이 더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벤츠코리아 관계자는 "E클래스의 판매량을 독일 본사도 주시하고 있다"며 "프로모션을 강화하기보다는 상품성과 소비자 가치 향상, 다양한 경험 제공으로 점유율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