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코노미] 재개발 매물 실종사건…범인은 재건축 규제?

입력 2020-01-16 08:42
수정 2020-01-16 08:44

서울 주요 재개발구역에서 매물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규제가 집중된 재건축단지 대신 재개발 입주권을 찾는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서다. 초·중기 재개발 사업장의 경우 재건축에 비해 적은 금액으로 투자가 가능한 데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도 먼 미래의 이야기다. ‘장기전’에 돌입하는 투자자들이 늘면서 매매가격도 뜀박질을 하고 있다.

◆‘장기전’ 노리고 초기 재개발로

16일 거여·마천뉴타운 일대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마천3구역 다세대주택 매매호가가 3개월 새 1억원가량 올랐다. 지난해 가을 구역지정취소소송에서 조합이 승소하면서 재개발사업이 기사회생한 영향이다. 최근엔 반지하 전용면적 16㎡ 매물이 5억2000만원에 손바뀜했다. 3.3㎡당 1억원을 웃도는 매매가격이다. 작은 지분이지만 앞으로 사업 단계가 바뀔 때마다 가격이 더욱 오를 걸 내다본 투자자가 입주자격을 선점하기 위해 사들였다.

마천동 일대엔 이 같은 초기 단계 재개발 사업장이 많다. 10년 가까이 멈춰섰다가 사업을 재추진 중인 곳들이다. 조합설립 절차를 진행 중인 마천3구역 외에도 4구역이 사업시행계획인가를 준비 중이다. 마천1구역은 이달 초 구역지정을 받았다. 이들 구역에선 하나같이 “매물이 없어서 못 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김정현 세계로공인 대표는 “강남권 재건축을 알아보다 선회하는 투자자들이 늘어난 영향”이라며 “바로 앞 거여동에서 재개발을 마친 아파트의 매매가격이 그간 크게 오른 데다 위례신도시의 새 아파트 분양까지 흥행하면서 매매가격이 힘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초기 재개발은 재건축과 비교해 소액투자가 가능한 게 장점으로 꼽힌다. 세를 안고 사들이면 2억~3억원의 목돈으로 조합원자격을 얻을 수 있다. 나중에 분양받을 자금이 모자라다면 그동안 오른 프리미엄을 받고 되팔면 된다. ‘12·16 대책’에서 강해진 규제도 피한다. 대부분 낡은 주택인 탓에 상가건물 등을 제외하면 매매가격 15억을 넘지 않아 초고가주택 대출 제한을 받지 않는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처럼 사업성을 낮추는 부담금 의무도 없다. 이 때문에 아직 구역지정을 마치지 않은 곳들까지 투자문의가 꾸준하다. 전농·답십리뉴타운 전농9예정구역에선 방 두 칸짜리 전용 27㎡ 빌라의 매매가가 4억원대까지 올랐다. 로또공인 관계자는 “이마저도 지난해 가을부터 매물이 귀해지고 있다”며 “올해 초 구역지정이 이뤄지면 웃돈이 5000만원 이상 더 붙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일선 중개업소에서 매물을 구하기 힘든 건 도심일수록 더욱 심하다. 광화문과 여의도가 가까운 마포에선 물건이 나오자마자 거래된다. 마포 주변은 재개발사업을 다시 진행 중인 구역만 서너 곳이다. 옛 염리5구역과 노고산동 주변 등이다. 주민입안제안 형태로 정비구역지정 절차를 밟고 있는 아현동 699 일대에선 지분 15㎡ 신축빌라가 4억7000만원에 매매됐다. 배찬석 아현스타공인 대표는 “사업 완료까진 10년 이상 남아 분양가 상한제 영향이 없다고 본 투자자들이 장기전을 염두에 두면서 매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근 다른 중개업소 관계자는 “구역지정을 추진 중인 곳에선 신축빌라 건축심의가 떨어지자마자 분양이 끝난다”며 “재개발구역이 될 곳의 입주권을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규제 심한 재건축 사느니…”

강남권 재건축 단지가 이중삼중 규제로 융단폭격을 맞는 사이 사업시행계획인가 전후 단계의 재개발구역 매매가격 오름세도 가팔라지고 있다. 재정비촉진계획 변경을 진행 중인 북아현2구역은 9억원 이하 매물이 거의 사라졌다. 일대는 광화문과 시청 인근 마지막 대단지 사업장으로 꼽히는 곳이다. 김근영 미래공인 대표는 “감정가 3억 중반대 다가구주택의 매매가격이 11억원대”라며 “지난해 여름만 해도 5억원대이던 프리미엄이 7억5000만~8억원대로 올랐다”고 말했다. 흑석뉴타운을 주로 거래하는 한강리치공인 관계자는 “10억 이상은 있어야 투자 가능한 물건이 대부분”이라면서 “세금 문제 때문에 투매하겠다는 매도인은 없다”고 전했다.

‘재개발 최대어’인 한남뉴타운도 강세를 보이는 중이다. 시공사 선정 작업을 진행 중인 한남3구역에선 지분 15㎡를 끼고 있는 물건이 최근 11억5000만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가을 9억5000만원에 나왔던 매물이다. 보광동 A공인 관계자는 “매수자들이 주로 찾는 9억~12억대 매물을 찾는 건 쉽지 않다”며 “이를 파악한 매도인들이 원하는 가격을 세게 부르고 있다”고 말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 대표는 “한남뉴타운과 성수전략정비구역은 재개발구역 가운데 매매가격이 높은 편이지만 12·16 대책 이후로도 손바뀜이 이뤄지고 있다”며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합헌 결정과 안전진단 강화 등 갈수록 재건축 환경이 악화하는 것에 대한 반사효과”라고 설명했다.

전면 철거방식의 재개발이 사실상 막바지란 점도 투자자들의 쏠림을 가속하고 있다. 서울시가 뉴타운출구전략을 수입한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 동안 해제된 정비구역은 394곳으로 전체(683곳)의 절반을 넘는다. 서울시가 내년까지 수립하기로 한 ‘2030 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의 경우 재개발 동력을 떨어뜨리는 내용이 많다. 구역 내 곳곳에 기존 건물과 시설을 남기는 형태의 수복재개발을 지향하기로 한 까닭이다. 재개발 전문가인 강영훈 부동산스터디 카페 대표는 “현재 사업을 진행 중이거나 추진하는 곳들은 대부분 2000년대 초·중반 뉴타운으로 지정됐던 곳들”이라며 “사업 절차와 추진 기간 등을 고려하면 새 아파트가 될 수 있는 마지막 재개발구역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전형진/안혜원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