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2020] 민간 주도 'AI 빅 푸시'로 가자

입력 2020-01-10 17:40
수정 2020-01-11 01:06
‘CES 2020’에서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SK텔레콤 등 한국 대기업과 중견기업, 그리고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들이 주목받았다. 미국 중국 다음으로 많이 참가한 한국 기업들이 인공지능(AI) 경제 시대에 새로운 비전과 가능성을 과시한 점은 큰 성과다. 동시에 이들 기업은 AI 발전과 확산이 예상보다 빨라지고 있어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과의 경쟁과 협력 속에 어떻게 비전과 가능성을 실현할지 숙제도 안게 됐다.


CES 2020에서 제조업체가 AI 서비스 플랫폼을 외치고 비(非)정보기술(IT) 기업이 AI 회사를 선언하는 것은 더 이상 낯선 모습이 아니었다. 업종 간 구분이 사라지는 ‘경계의 종말’이 뚜렷했다. 소프트웨어 상상력이 하드웨어 발전으로, 하드웨어 상상력이 소프트웨어 발전으로 이어지면서 기술 진화에 속도가 붙고 있다. 예측하기 어려운 기업 간 합종연횡과 질서의 재편 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이 AI 선도국 그룹에 진입하려면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고삐를 바짝 죄어야 한다.

국내 AI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KAIST와 함께 27명의 특별취재단을 구성한 한국경제신문은 CES 취재를 마무리하면서 ‘AI 강국’ 건설을 위해 4대 아젠다를 제시한다. 우선 AI 국가전략을 민간 주도의 ‘빅 푸시(big push·강력한 동시다발 육성전략)’로 전환해야 한다.

AI 규제를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면 수정하는 것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 또 글로벌 수준의 AI 인재를 양성하고, AI 연구·투자에 신바람을 불어넣는 데 산·학·관이 힘을 합쳐야 한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각개전투 한국 AI…"규제 때문에 실패" 말 안 나오게 국가전략 바꿔라

(1) AI 국가전략, ‘빅 푸시’로 전환

정부는 지난해 12월 ‘AI 국가전략’을 발표했다. 미국은 2016년 10월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AI 국가 연구개발 전략’을 제시했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6월 수정 계획을 내놨다. 중국은 2017년 7월 ‘차세대 인공지능 발전계획’을, 일본은 지난해 3월 ‘AI 전략 2019’를, 독일은 2018년 11월 AI 육성전략을, 영국은 2018년 4월 ‘AI 섹터 딜(sector deal)’을 제시했다. 추격에 속도를 내기 위한 가장 좋은 전략은 한국이 익숙한 ‘빅 푸시’다. 혁신의 수요·공급 양 측면을 동시에 끌어올리면서 AI(인공지능) 생태계를 조기에 구축하고 AI와 연관 산업을 한꺼번에 일으키는 방식이다. ‘정부 주도’가 아니라 변화 감지가 정부보다 훨씬 빠른 기업이 자율과 창의를 바탕으로 앞에서 맘껏 뛰고 정부는 뒤에서 적극 밀어주는 ‘민간 주도’로 가자는 것이다.

(2) AI 규제개혁 범위·방식의 전면 수정

기업이 ‘AI 하기 좋은 환경’부터 조성해야 한다. 핵심은 AI 기업 활동의 규제로 인한 시간과 비용을 어떻게 줄이느냐다. 데이터의 수집·활용을 제한하는 규제가 전부가 아니다. CES 2020이 선보인 다양한 AI 제품·서비스가 국내에서 꽃을 피우려면 인허가 간소화도 절박하다. 경계의 종말에 대응하기 위해 규제개혁의 범위부터 전 업종으로 넓혀야 한다.

규제 불확실성의 발생 소지 자체를 없애는 법 개정보다 규제 문제가 불거진 뒤 임시 대응하는 보조적 성격의 규제 샌드박스에 더 의존하는 방식도 개선이 필요하다. 한국의 법체계에서 ‘우선 허용, 사후 규제’를 확실히 하려면 법 개정이 규제개혁의 본질이 돼야 한다. 경쟁국 기업은 법 개정 부담 없이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달리는데, 한국 기업은 규제 샌드박스로 기어가면 경쟁이 될 수 없다.

(3) 글로벌 수준의 AI 인재 양성

국가 간, 기업 간 AI 인재 쟁탈전이 치열하다.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면 글로벌 기업과 연구소를 불러들이는 데도 유리해진다. ‘수도권이냐, 지방이냐’로 다툴 때가 아니다. 글로벌 경쟁 관점에서 인재를 양성하려면 수도권 규제부터 확 풀어야 한다.

AI 대학원도 ‘정부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야 차별화·특성화가 가능할 것이다. 정부가 AI 인재 양성을 위해 교수의 기업 겸직을 허용하겠다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기업과 대학 간 인적 교류의 문턱 자체를 없애야 한다. 2018년 미국에서 AI 박사 학위 취득자의 60% 이상이 기업으로 갔다. 대학을 떠나 기업으로 가는 AI 교수도 늘어나는 추세다. 인재의 해외 유출을 막으려면 경쟁력 있는 AI 기업이 많을수록 좋다.

(4) AI 연구·투자 신바람 조성

산업계에서 AI 연구와 투자 붐이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다양한 AI 비즈니스 모델이 시장에서 분출할 수 있다. 맞춤형 AI 연구와 활용은 기업 스스로 해야 하는 만큼 투자에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줄 필요가 있다. 정부의 AI 연구도 쇄신해야 한다. 관료가 주도하면 ‘모방형’ ‘위험 회피형’으로 흐를 게 뻔하다. 기업가 정신을 겸비한 전문가 주도로 가야 한다.

미국의 스탠퍼드대 AI 인덱스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AI 알고리즘 등 시스템의 처리 시간이 ‘시’ 단위에서 ‘초’ 단위로 단축되고 있고, 비용도 급감하고 있다. CES 2020에서도 논리적 추론이 요구되는 분야를 제외한 자연어 처리 분야 등에서는 기술적 성능 향상이 괄목할 정도였다. 이에 뒤지지 않으려면 컴퓨팅 파워 등 연구와 혁신 인프라 확충을 서둘러야 한다. AI 산학협력도 절실하다.

CES 2020은 기술 경연장인 동시에 기업 짝짓기의 탐색장이었다. 현대자동차는 우버와 손을 잡았다. 삼성전자의 새로운 인수합병(M&A) 리스트도 꽉 찬 듯했다. 빠른 기술 획득과 신시장 진출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M&A, 전략적 제휴, AI 스타트업 투자 등에 방해가 되는 걸림돌 제거가 시급하다.

라스베이거스=안현실 논설·전문위원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