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이란에서 우크라이나항공 여객기가 이륙 직후 추락해 탑승객 176명 전원이 사망한 사고와 관련해 ‘이란 미사일 격추설’에 점점 더 힘이 실리고 있다. 미사일이 여객기를 치는 장면을 포착한 비디오가 공개되는 등 여러 증거가 나오고 있어서다. 미국과 캐나다 등은 “이란의 오인 사격 때문에 여객기가 추락했다”며 명확한 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란은 여전히 미사일 격추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9일(현지시간)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기자회견을 열고 “복수의 정보통이 입수한 증거들을 통해 여객기가 이란의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된 사실을 확인했다”며 “오인 사격이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항공 소속 PS752편 여객기는 8일 오전 6시12분 우크라이나 키예프로 가기 위해 이란 테헤란의 이맘호메이니 국제공항을 이륙한 후 3분 뒤 테헤란 외곽 남서쪽 지역에 추락했다. 사망한 탑승객 176명 가운데 캐나다 국적이 63명으로 이란 국적(82명) 다음으로 많았다. 이외에 우크라이나 11명, 스웨덴 10명, 아프가니스탄 4명, 독일과 영국 각각 3명 등이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사고에 대해 “(이란의 주장처럼) 기계적 결함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란)이 실수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성명을 내고 “추락 여객기가 이란의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됐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많은 정보가 있다”며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캐나다를 포함한 국제 파트너들과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19초짜리 동영상을 홈페이지에 게재하며 “우크라이나항공 여객기가 미사일에 피격된 사실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NYT는 “이 영상을 자체 검증했으며 우크라이나항공 여객기 추락 사고 당시 찍힌 것이 맞다”고 전했다.
미국 CBS방송은 미국 정보당국 관계자를 인용해 미군 정찰 인공위성이 사고 당시 두 차례의 미사일 발사를 감지했다고 보도했다. CNN은 국방부 고위 관계자와 이라크 정보당국 관계자를 인용해 우크라이나 여객기를 격추한 미사일이 러시아산 토르 M-1 지대공 미사일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위원회의 알렉세이 다닐로프 서기도 “우크라이나 여객기가 러시아제 지대공 미사일 토르에 피격당했을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항공 전문가들은 기술적 근거를 들며 미사일 격추설에 힘을 보태고 있다. 미 연방항공청(FAA)과 미 교통안전위원회(NTSB)의 전직 관리들은 엔진 화재에 따른 추락이라는 이란 정부 주장에 대해 “엔진 두 개가 모두 고장나도 일정 시간 양 날개로 활공할 수 있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아울러 추락 현장에 산산조각 나 흩어진 잔해들은 이 여객기가 공중에서 폭발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란은 여전히 미사일 격추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사고 조사와 관련해 블랙박스를 외부에 넘길 뜻을 밝히는 등 사고 직후에 비해서는 태도가 다소 누그러졌다. 알리 아베자데 이란 민간항공청장은 10일 “블랙박스를 분석하는 데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다른 나라에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사고 직후 블랙박스를 추락 여객기 제조국인 미국에 제공하지 않겠다던 것에서 입장을 바꾼 것이다. 같은 날 세예드 압바스 무사비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미국 항공당국과 보잉사도 조사에 초청했다”고 말했다.
미사일 격추설이 확산되면서 뉴욕증시에서 보잉 주가는 반등했다. 8일 1.75% 하락했지만 9일엔 1.5% 상승했다. 앞서 이 여객기 기종이 보잉 737시리즈의 한 종류인 737-800 기종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보잉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보잉 737 라인의 최신 기종인 보잉 737 맥스는 2018년 10월과 2019년 3월 인도네시아와 에티오피아에서 잇따라 추락해 승객 및 승무원 총 346명이 숨지는 참사를 냈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