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 크기로 말하면, 참 놀랄 만큼 차이가 심합니다. 저희는 변호사들과 거래가 많습니다만, 그분들의 머리 치수는 놀랄 지경입니다. 아마 생각할 일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요?”
영국의 모자 장수는 머리 크기로 사람들의 자질과 능력을 판단한다는 유명한 예화다. 우리는 모두 나름의 창문으로 세상을 본다. 창문 모양과 색깔에 따라 비치는 사물의 이미지도 달라진다. 전문가들도 각자 분야에 따라 접근 방식이 다르다. 국가와 공동체의 흥망성쇠에서 종교인은 도덕, 철학자는 사상, 외교관은 국제관계, 경제학은 물적 토대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특히 경제학은 구체적 수치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실질적 분석으로서 차별성을 갖는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로 유명한 토드 벅홀츠는 《다시, 국가를 생각한다》에서 동서고금의 국가들이 빈곤에서 출발해 경제적 번영에 이른 뒤 쇠퇴기에 들어서는 패턴을 분석했다. 고대 국가도 인구와 세금에 대한 자료는 기본이어서 데이터 분석이 가능했다. 국가 단위가 운영되기 위해서는 인구를 파악해 군대를 편성하고 세금을 징수해야 한다.
그에 따르면 빈곤에서 탈피한 경제적 번영은 ‘출산율 저하와 공공부채의 증가’로 이어지고 ‘근로윤리 쇠퇴와 애국심의 소멸’이 수반되면서 파국을 맞게 된다. ‘국가의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25년 단위로 두 번 연속 2.5% 이상을 기록할 때 출산율은 대체율(여성 1명당 2.5명의 자녀)을 밑돌게 된다’는 패턴은 고대 스파르타, 로마제국, 나폴레옹 이후의 프랑스와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된다.
군사 강국 스파르타조차 기원전 4세기의 인구가 전성기 대비 절반 이하로 격감하면서 핵심 전력이던 중무장 보병대가 약화돼 패망했다. 출산율 저하와 반려동물 증가는 동전의 양면이다. 빈곤한 시절에는 생존과 번식이라는 본능에 기반해 높았던 출산율이 경제적으로 풍요해지면 현재의 안락한 삶을 중시하게 되면서 하락한다.
국가 패망의 결정타는 공무원과 세금의 증가로 나타난다. ‘국가가 부유해지면서 관료조직은 방대해지고, 이는 부채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는 현상의 여파다. 비대해진 관료조직이 규제를 양산하면서 제도적 혁신을 가로막고, 사회의 낙관적인 전망은 위축된다. 이는 3700년 전 바빌로니아의 왕 함무라비가 목동의 임금과 가격을 통제한 정책까지 연원을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명나라에서도 당시 유학자들은 상인을 기생충으로 비하했다. 그리고 관료조직을 확장함으로써 상인들을 감시하고 궁극적으로 억압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경제의 숨통을 옥죄고 왕조를 내부적으로 몰락시켰다.
다음 단계는 ‘근로윤리의 쇠퇴와 애국심의 소멸’이다. 팽창된 공무원 조직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통제가 사회를 부패시키고 활력을 저하하면서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정책과 제도에 기생해 이익을 취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중세 유럽의 길드처럼 강력해진 이익단체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활용해 기득권을 지키면서 근로윤리가 쇠퇴하고 애국심은 소멸한다. 198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스티글러가 포획이론(capture theory)에서 ‘공공부문의 규제와 자격증의 남발, 공익을 표방하고 세금을 탈취하는 카르텔의 형성’으로 설명한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패턴을 오늘날 우리나라에 대입하면 맞춤형 양복처럼 들어맞는다. 공공부문 팽창과 규제 증가, 시장원리 훼손과 기업활동 제약, 이익단체의 국가 포획과 근로윤리 쇠퇴가 동시 진행형이다. 역사적 사례에서 수백 년 동안 밟아온 경로가 우리나라에서는 수십 년으로 압축돼 진행되고 있다.
인간에게 생로병사가 숙명이듯이 국가의 흥망성쇠도 불가피하다. 그러나 유구한 인류 역사에서 일시적 행운으로 잠깐 부각되는 국가가 수없이 명멸하는 가운데 합리적 제도와 지속적 혁신으로 오랜 기간 번영하는 공동체도 출현한다는 교훈을 우리 모두가 되새겨야 할 엄중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