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생명도 외부 에너지 유입 없이는 자신을 유지할 수 없다. 생명은 열린계(系)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물끼리 벌이는 사투도 에너지 확보를 위한 절실함에 다름 아니다.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도 죽을 때까지 에너지 확보를 위한 경쟁을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소유한 에너지의 양은 행복의 지표다. 부를 축적하는 것은 복을 짓는 일이다. 제도권에서 우리는 점유 공간을 끊임없이 확장하고 싶어한다. 결국 끝이 보이지 않는 무한경쟁 속에서 모두가 지쳐간다. 그러나 멈추고 싶어도 전속력으로 달리는 차에서 내리기 어려운 것처럼 그저 속수무책으로 앞으로 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일을 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일종의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다. 크든 작든 각자가 건설한 제국의 크기가 인생 최종 산물이다. 그러다가 무슨 이유에서든지 더 이상 그 일을 못하게 된다. 퇴임도 이유 중 하나다. 결국 사람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전력을 다해 건설한 자신의 제국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는 제국에서의 지위를 잃고 비제도권으로 돌아간다.
이때 나이가 질문을 한다. ‘너에게 이제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되는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시공간의 존재이기 때문에 시간과의 싸움을 잠시 잊을 수는 있어도 끝까지 피할 순 없다. 살아오면서 공간 확장에 모든 노력을 경주하면서 시간 문제에는 어떤 준비도 없었던 탓일까. 문제는 심각하다. 해결의 길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
2500년 전 석가 붓다의 가르침인 《금강경》에 이 문제의 답이 있다. 수보리의 질문에 대한 석가의 답은 힘이 있다. 복 짓는 일보다 깨닫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금강경》은 한 번만이라도 또 잠시라도 깨닫는 일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금강경》은 네가 아상(我相)을 버리면 우주의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었다는 것을 깨우치게 된다고 알려준다. 모든 것이 연결되면 우리 생각대로 실현되는 일체유심조의 세계가 펼쳐진다.
모든 일이 인연으로 일어나고 인연이 멸하면 모든 것이 없어진다는 공사상(空思想)이 뒤를 받치고 있다.
인생이란 공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복을 짓고 축적하는 일이다. 반면에 존재의 시간적 유한함을 인식하는 건 깨닫는 일이 될 것이다. 석가 붓다는 말한다. 결국 시간이란 것은 우리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고, 주변 많은 것에 붙여놨던 착을 떼면 시간이 정지되고 생과 사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금강경》은 퇴임 후 인생들에게 주는 석가여래의 멋진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