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측근들에 대한 대거 물갈이 조치와 관련해 별다른 입장 표명 없이 이틀째 침묵을 지켰다. 항명의 목소리를 내 갈등을 일으키는 것보다 조직을 추슬러 현 정권을 겨냥한 수사를 차질 없이 이어나가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라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9일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압수수색하며 인사이동과 관계없이 관련 수사를 철저히 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윤석열 “각자 위치 지켜달라”
윤 총장은 전날 지방 등으로 전보된 대검 참모들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사표를 내지 말고 각자 자신의 위치를 지켜달라”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당부에 따라 한동훈 대검 반부패·강력부장과 박찬호 공공수사부장 등도 검찰에 계속 남을 것으로 전망된다.
당초 ‘형님 리더십’을 보여온 윤 총장이 자신의 측근이 대거 좌천되면 사표를 낼 것이란 예상도 있었으나, 현재로선 이 같은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윤 총장의 결심으로 정권을 겨냥한 수사가 진행됐는데, 이 상황에서 본인만 검찰을 떠나버리는 게 오히려 더 무책임할 수 있다”며 “외풍을 막아 수사가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검찰총장 본연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검찰 내부에서도 이번 인사에 대해 격앙된 반응이 많지만 외부로 표출하는 것은 자제하는 모양새다. 불만의 표시로 사의를 밝힌 검사가 아직 나오지 않았으며, 검사들의 내부 통신망에도 정부를 비판하는 글이 올라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도권 지검 한 검사는 “검찰이 집단반발하는 모습은 현 정부가 검찰개혁, 집단이기주의라는 프레임을 잡고 공격하기 좋은 소재가 된다는 점에서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의 조직문화가 바뀌면서 과거처럼 검찰의 집단행동이 나오기 어려워졌다는 얘기도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검찰 조직이 한몸처럼 움직인다는 ‘검사동일체’ 원칙이 많이 약해졌다”고 했다. 지방에서 근무하는 한 검사는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검찰 인사에서 너무 윤 총장 측근 위주로 한 만큼, 이번 인사에 대해 어느 정도 수긍하는 검사도 꽤 있다”고 전했다.
檢 중간간부 인사태풍 또 몰아칠 듯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공수사2부(부장검사 김태은)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 있는 균형발전위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송철호 울산시장은 지방선거를 준비하던 2017년 12월 균형발전위 고문으로 위촉됐다. 검찰은 당시 고문단으로 함께 참여한 여권 인사들이 송 시장의 공약 수립과 이행 등에 도움을 줬을 가능성을 수사 중이다.
검찰은 관련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조만간 인사태풍이 또다시 몰아칠 것으로 예상돼 당분간 공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다음달 3일 평검사 인사를 할 계획이고, 그 전인 이번달 설연휴 전후로 차장·부장검사급 중간간부 인사를 할 예정이다.
이번에 현 정권을 겨냥한 수사 지휘라인을 대거 교체한 것처럼, 법무부가 관련 수사 실무진도 대폭 이동시킬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의 신봉수 차장검사, 김태은 부장검사와 조국 가족 비리 수사 실무자인 송경호 차장검사 등이 교체 대상으로 거론된다.
보수성향 변호사단체인 ‘한반도 인권과 평화를 위한 변호사모임(한변)’은 이날 추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 서지현 검사에게 인사보복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에게 무죄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추 장관이 법적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하지만 서초동 한 변호사는 "추 장관의 인사는 권력형 비리 그리고 국민 주권에 심대한 영향을 주는 선거개입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지휘부를 통체로 날린 사건"이라며 "검사를 원하지 않는데로 보낸 안태근 사건을 추 장관 사건에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인혁/안대규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