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곤 "日검찰, 처음부터 유죄 단정하고 자백 강요했다"

입력 2020-01-09 00:53
수정 2020-10-22 19:15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기다리던 중 일본을 탈출한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이 ‘일본 탈출’ 후 첫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의 사법제도를 강하게 성토했다. 일본 검찰이 유죄를 전제로 비인권적인 조사를 했고, 일방적으로 자백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일본 검찰에 체포된 이유로는 2017년 이후 닛산자동차의 경영상황이 악화돼 구조개혁을 추진하자 입지가 불안해진 닛산의 일본인 경영진이 ‘진주만 공습’이 연상될 정도로 기습적으로 쿠데타를 자행했다고 주장했다. 곤 전 회장이 외신을 통해 일본 사법당국과 닛산자동차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서면서 곤 전 회장과 일본 정부 간 대립은 장기전으로 흐를 전망이다.


“일본 검찰 협박과 회유”

곤 전 회장은 8일(현지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탈출 이후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등장했다. 분홍색 넥타이를 맨 정장차림의 곤 전 회장은 “2018년 11월 도쿄에서 체포된 이후 한순간도 자유를 맛본 적이 없다”며 “왜 일본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은 일본 사법제도와 닛산자동차에 대한 비판으로 채워졌다. 공세의 포문은 일본 사법제도로 향했다. 곤 전 회장은 “일본 검사들은 처음부터 유죄로 단정하고 자백을 강요했다”며 “진실을 밝히는 것은 그들의 관심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일본 검찰이 “자백을 하면 모든 게 끝난다. 만약 자백을 하지 않으면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 가족까지 추적할 것”이라고 협박과 회유를 했다고도 폭로했다.

곤 전 회장은 이어 “나는 사법 판결을 받지 않고 도망간 것이 아니라 부정의와 정치적 검사들로부터 탈출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선 탈출 이외의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자신을 축출했던 닛산자동차에 대해선 주요 전·현직 경영진의 실명을 거론하며 날 선 비판을 했다. 곤 전 회장은 “마치 2차 세계대전 당시 ‘진주만 습격’이 이뤄진 것처럼 기습적으로 일본인 경영진의 쿠데타가 벌어졌다”며 사이카와 히로토 전 닛산자동차 최고경영자(CEO) 등을 쿠데타 주모자로 지목했다. 1999년 파산 위기에 처한 닛산자동차를 회생시킨 뒤 2017년 이후 실적 둔화에 대응하기 위한 개혁작업을 진행한 것이 일본인 경영자들의 불안감을 자극한 것으로 봤다.

탈출 방법은 함구

곤 전 회장은 세계 언론의 관심을 끌었던 일본 탈출방법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닛산자동차 쿠데타의 배후는 일본 정부임을 밝히겠다’는 예고와 달리 “레바논 국민과 레바논 정부에 피해가 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일본 정부에 대한 구체적인 비난을 하진 않았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곤 전 회장 측이 선정한 세계 각국의 60여 개 언론사가 초대됐다.

곤 전 회장이 일본의 사법제도 문제점을 물고 늘어지면서 일본 정부와 사법당국은 곤혹스러운 표정이 뚜렷하다. 곤 전 회장은 2018년 11월 도쿄지검에 기습적으로 체포된 직후부터 줄곧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해왔다. 도쿄지검은 곤 전 회장 체포 후 최장 23일로 제한된 구속 기간 내에 수사를 끝내지 못했고 별건 수사 형태로 구속 기간을 연장해 무려 108일간이나 구속을 이어갔다. 이어 네 번이나 구속과 석방을 반복하며 곤 전 회장을 압박했다.

여기에 도쿄지검 특수부 조사에서 변호인이 동석할 수 없었으며 주말에도 조사가 이뤄진 점이 문제로 지목됐다. 이날 기자회견에선 “구치소에서 1주일에 두 번밖에 샤워를 할 수 없었다”며 “영어나 프랑스어를 말할 줄 아는 사람도 없었다”고 열악한 일본의 구치소 환경도 거론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