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오너 리스크 vs 오너 프리미엄

입력 2020-01-08 18:48
수정 2020-01-09 00:25
반가운 소식이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이 지난해 매출 2조원을 달성해 ‘세계 4대 백화점’ 반열에 올랐다. 2000년 10월 서울 반포동 센트럴시티 건물을 빌려 임차점포로 시작한 지 20년 만이다. 업계에서는 “오너 경영자의 과감한 결단과 입지의 장점을 극대화한 복합개발, 소비 트렌드에 맞춘 기민한 혁신이 어우러진 결과”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은 10년 전 임차료 인상 요구를 받고 ‘특단의 베팅’을 단행했다. 센트럴시티의 잠재력을 보고 지분 60.02%를 1조250억원에 인수해 판을 새로 짰다. 신·증축으로 영업 면적을 서울시내 최대 규모로 확장하고, 면세점을 들이면서 명품 매장을 늘렸다. 건물 내 JW메리어트호텔을 재단장해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했다.

‘오너 경영’의 힘은 대규모 투자를 결정할 때 빛난다. 오너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기업의 미래 전략을 주도할 수 있다. 단기성과에 쫓기기 쉬운 전문경영인과 다르다. 삼성 현대 LG SK 롯데 등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오너 경영의 장점을 잘 활용한 덕분이었다.

정주영 현대 창업자는 거북선이 그려진 지폐로 투자자들을 설득해 맨손으로 세계적인 조선소를 일궈냈다. 이병철 삼성 창업자는 ‘첨단기술에 국가의 미래가 달렸다’며 반도체사업에 사운을 걸었다. 구인회 LG 창업주는 금성사 사장 시절 최초의 ‘국산 라디오’로 전자산업의 꽃을 피웠다.

오너경영에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독단적인 경영이나 부적절한 처신으로 기업에 피해를 입히는 ‘오너 리스크(owner risk)’에 빠지는 기업도 적지 않다. 기업 이미지를 갉아먹고 불매운동을 초래하는 오너도 있다. 그러나 남다른 결단력과 경영 능력을 갖춘 리더들에게는 ‘오너 프리미엄(owner premium)’이 붙는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대규모 투자를 즉석에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오너십 덕분이다. 오너의 인맥은 또 다른 프리미엄이다.

미국에서는 S&P 500대 기업 중 35%가 오너를 정점으로 하는 가족경영기업이다. 스웨덴 최고 명문 발렌베리 가문은 150여 년간 5대에 걸친 세습 오너경영을 이어가고 있는데도 국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오너는 자신과 가문을 넘어 기업의 평판까지 좌우한다. 신세계는 최근 한국기업평판연구소가 발표한 백화점 브랜드평판지수에서 1위로 우뚝 섰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