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신년사를 통해 경제, 외교·안보 등 국정 전반에 대한 구상을 밝혔다. 올해도 ‘경제 회생’을 국정 우선순위로 꼽은 게 주목된다. 문 대통령은 “2020년은 경제가 힘차게 도약하는 해가 될 것”이라며 “경제 활력을 되찾고 나아진 경제로 ‘확실한 변화’를 체감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제 살리기’는 ‘노동 존중’ ‘포용’ ‘공정’ 등 미사여구가 저절로 가져다주지 않는다. “경제지표들이 뚜렷이 회복되고 있다”는 자화자찬과 현실에 대한 오독에서 벗어나 경제를 발목잡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근본 해법을 내놔야 가능하다. 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선진국 도약의 전제 조건으로 꼽은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 실현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은 “선진적 노사관계 등 노동존중은 우리 사회가 반드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강조했는데, 제대로 된 방법을 성찰하는 게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노동 존중’을 표방하며 쏟아낸 정책들이 실제로는 ‘대형 노조 존중’이나 다름없었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진다. 진정한 노동 존중은 임금·근로조건이 월등한 10% ‘노동귀족’이 비정규직 등 90% ‘노동약자’ 위에 군림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깨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대기업 노조가 파업을 일삼으며 생산성 이상의 임금을 챙기는 탓에 납품 단가 인하 등으로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있다.
정부는 근로시간 단축, 해고자 노조 가입 허용 등 대기업·공기업 정규직 노조원들에게 주로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들은 고용 안정성이 높아지고, 임금이 오르고,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기는 동안 상당수 중소기업·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저녁거리’를 걱정하는 곤경으로 내몰리고 있다. 현 정부 들어 노동시장의 ‘확실한 변화’는 대기업·공기업 노조 위주의 민노총이 ‘촛불 청구서’를 내밀며 ‘제1 노총’으로 부상한 것 말고 어떤 게 있었는지부터 겸손하게 돌아봐야 할 것이다.
자유시장경제에서 노동 존중은 ‘최고 복지’인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이 튼실하게 돌아가야 보장받을 수 있다. 성동조선해양 등의 사례처럼 기업이 어려움에 처하면 노동 존중은커녕 일자리 보전에 급급해지게 마련이다. 기업인을 의심과 조롱의 색안경을 끼고 보는 ‘기업인 유죄추정주의’와 ‘기업 성악설’에 의거해 경영을 핍박하는 환경에서는 근로자들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보장받기 어렵다. 기업경영의 손발을 묶는 상법 개정, 경영권을 위협하는, “걸리기만 해 보라”는 식의 산업안전보건법 강행으로 기업인을 겁박하는 법제도 앞에서 기업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혁신을 가로막는 기득권은 문 대통령이 말한 ‘가장 아픈 부분’인 40대 고용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일자리를 늘릴 의지가 있다면 규제의 덫부터 걷어내야 한다. 현대자동차가 규제를 피해 미국에서 모빌리티 혁신사업을, 네이버가 일본에서 원격의료 사업을 벌이는 상황에서 질 좋은 일자리가 제대로 생길 리 없다. 신산업 진입규제를 걷어내고 노동시장을 유연화하지 않고 ‘경제 허리’인 40대 일자리를 늘릴 길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