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사태로 反中 감정 고조…차이잉원 대만 총통 재선 유력

입력 2020-01-05 18:15
수정 2020-01-06 02:05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대만의 총통과 입법원 선거(대선·총선)가 오는 11일 치러진다. 여론조사 추세를 보면 현 총통인 민주진보당 소속 차이잉원의 재선이 유력하다. 한때 ‘경제 무능’이라는 비판 속에 하락했던 지지율이 홍콩 사태로 악화된 반중(反中) 감정을 발판으로 급상승했다.


차이 총통과 민진당 정권은 ‘독립 대만’을 내세운다는 점에서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는 본토 중국과 마찰을 빚어 왔다. 그가 재선되면 양안 관계는 물론 미국,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 정세도 새로운 전기를 맞을 전망이다.

대만 빈과일보가 가장 최근 벌인 대선후보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차이 총통과 라이칭더 부총통 후보 진영(민진당)이 지지율 48.6%를 확보했다. 2위인 중국국민당(제1야당) 후보 한궈위 가오슝시장과 장산정 전 행정원장(총리) 조합(15.4%)을 여당이 세 배 이상의 압도적 격차로 앞서고 있다. 이 조사는 지난해 12월 27~29일 시행돼 31일 발표됐다.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차이 총통 지지율이 이렇게 높았던 것은 아니다. 차이 총통과 민진당은 2016년 대선에서 ‘독립 주권 국가로서의 대만’을 내세워 국민당의 8년 집권을 끝내고 정권을 탈환했다. 국민당의 지나친 중국 의존 성향을 공략한 것이다. 하지만 반중, 탈(脫)원전 등 이념에 치우쳐 경제에 실패했다는 평가 속에 민진당은 2018년 지방선거에서 912석 중 26.1%인 238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경제 살리기를 내세운 국민당은 394석(43.2%)을 확보하며 약진했다. 작년 7월 초 여론조사에서도 한 시장이 38.4%로 25.5%에 그친 차이 총통을 크게 앞섰다. 대만의 대선은 한국의 국회에 해당하는 입법원 총선도 함께 치른다. 민진당은 자칫 대권은 물론 입법원까지 내줄 판이었다.

바닥을 기던 차이 총통 지지율이 반등한 결정적 이유로 지난해 6월부터 시작된 홍콩 사태가 꼽힌다. 행정장관 직선제 등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격화되고, 친중(親中) 홍콩 정부가 이를 강압적으로 억누르는 과정에서 대만 시민들의 반중 감정이 깊어졌다는 분석이다.

대만을 대표하는 두 당인 민진당과 국민당은 중국에 대한 입장이 크게 다르다. 1949년 국공내전에서 밀려 대만으로 넘어온 국민당의 주요 지지 기반은 당시 함께 건너온 이른바 ‘외성인(外省人)’이다. 국민당과 외성인은 2000년 민진당의 정권 교체까지 50년 넘게 대만 주류층을 차지했다. 국민당은 중국 본토와 같이 ‘하나의 중국’을 지향한다. 반면 민진당은 국공내전 이전부터 대만에서 살아온 ‘본성인(本省人)’이 주축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중국인’이라기보다는 ‘대만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차이 총통은 “홍콩의 정치적 위기는 중국이 주장하는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의 실패를 증명하는 것”이라며 “대만을 제2의 홍콩으로 만들지 않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중국이 주장하는 ‘일국양제 대만방안’을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다.

대만 국가원수인 총통은 미국처럼 임기 4년에 한 차례 연임할 수 있다. 차이 총통이 연임에 성공하면 4년 동안 대만과 중국의 갈등은 더 깊어질 것이란 관측이 많다.

대만 입법원은 지난해 말 국민당이 불참한 가운데 중국을 겨냥한 ‘반침투법’을 통과시켰다. 반침투법은 ‘외부 적대 세력’의 자금 지원이나 지시, 기부금 등을 받은 자의 선거 개입, 집회, 로비 등을 금지한다. 중국 정부는 ‘반중 정서를 부추기는 법’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대만 정부는 중국이 경제 성장 둔화세가 지속되면 관심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대만과의 군사적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까지 하고 있다. 중국은 2016년 차이 총통 취임 이후 ‘물밑 외교’로 대만의 6개 수교국에 압박을 가해 단교하도록 했다. 현재 대만의 수교국은 15개뿐이다.

양안 관계 악화는 미·중 갈등 고조로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많다. 중국은 무력 동원 가능성까지 시사할 정도로 대만의 독립 시도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반면 미국으로서는 대만이 한국과 함께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최전선이다. 대만 독립을 유지하는 게 미국의 전략적 방향이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