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에 사는 구력 30년, 핸디캡 10의 사업가 A씨(52). 그는 요즘 집 지하 창고를 개인 골프연습장으로 개조하고 있다. 경기 용인까지 오가며 받던 레슨을 끊고 독학 골프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오랫동안 눈여겨본 ‘스윙분석기(launch monitor)’도 들여놓을 작정이다. 그는 “예전에 비하면 가격이 많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비싸긴 해서 큰맘 먹고 지른 것”이라면서도 “클럽 구입비와 레슨비를 따져보면 본전을 뽑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골프 스윙분석기 시장이 슬금슬금 덩치를 키우고 있다. 장비 한 대가 웬만한 승용차 한 대 값인 2000만~3000만원대에 달해 장비값에 둔감한 ‘시리어스 골퍼’들도 입이 떡 벌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근 3년간 판매대수 증가율이 연평균 30%를 넘을 정도로 고속 성장하고 있다. 이 분야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은 물론 한국도 마찬가지다. 스윙분석기 브랜드 트랙맨 관계자는 “본사 방침에 따라 구체적인 수치를 밝힐 순 없다”면서도 “최근 3년만 놓고 보면 한국도 판매대수 기준으로 성장률이 평균 30%를 넘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과학 뒷받침된 학습 효과가 인기 비결
시장을 주도하는 대표주자는 2003년 미사일 추적 장치 기술을 기반으로 태어난 트랙맨이다. 이후 3년에 걸쳐 골프공 추적 능력 등을 개선하고 2006년 미국프로골프(PGA)투어를 고객으로 확보하며 투어 프로의 필수품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트랙맨에 따르면 PGA투어 세계 랭킹 100위 이내 선수 중 90% 이상이 트랙맨을 쓴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5·미국)를 비롯한 메이저 챔프들도 마찬가지. 지금은 플라이트스코프, 톱트레이서, GC쿼드, 스카이트랙 등 다양한 브랜드가 시장에 뛰어들어 경쟁이 한층 뜨거워졌다. 비거리, 스윙 스피드, 볼 회전량, 발사각 등 6~30개의 다양한 스윙 관련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일목요연하게 확인하고 스윙 교정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이 때문에 레슨프로들 사이에서도 ‘필수품’이란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최근 들어선 아마추어 골퍼들로 고객층이 확대되고 있다. 프로의 경험과 감(感)이 아니라 ‘데이터’ 기반 레슨이 보편화하면서 이를 체험한 아마추어 골퍼가 구매자로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트랙맨 관계자는 “실내연습장이나 레슨프로가 주로 사갔는데 요즘엔 주말 골퍼가 개인적으로 구입하는 사례가 많다”며 “자신의 스윙 문제를 스스로 고치려는 ‘스마트 골퍼’가 늘어난 영향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골프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사비를 들여 백악관에 5000만원이 넘는 트랙맨 풀 시스템을 갖췄다.
“제품별 가격, 성능 꼼꼼히 따져봐야”
요즘은 작고 가벼운 제품이 대세다. 가격이 저렴한 보급형 제품도 잇달아 출시되고 있다. 고객군이 한층 넓어진 배경이다. 최고가 브랜드로 꼽히는 트랙맨4와 GC쿼드는 각각 약 3300만원, 2500만원이다. 보급형 제품은 주요 기능만 갖췄다는 게 특징. 스카이트랙이 200만~300만원대에 팔리고 있고, 플라이트스코프의 미보(MEVO)와 보이스캐디의 SC300은 80만원 안팎이다. 무게는 미보 220g, SC300 434g으로 트랙맨4(2.8㎏)와 GC쿼드(3.8㎏)보다 가볍다.
가격 차이가 큰 만큼 성능 차이를 무시할 수 없다는 평가다. 트랙맨과 GC쿼드는 클럽과 공이 움직이는 실측 데이터를 기반으로 30여 개의 스윙정보를 제공한다. 반면 SC300은 비거리와 발사각, 스윙 스피드 등 정보가 6개로 압축돼 있다. 오차 범위도 고사양 제품이 적다는 평가다. 트랙맨의 오차 범위는 100야드당 0.3m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한 레슨프로는 “제품마다 측정 가능한 기술과 측정값 오류 범위 등이 제각각”이라며 “가격 대비 성능이 어느 정도 인지, 내게 정말 필요한 데이터가 뭔지를 냉정히 따져보고 구입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