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자 곤' 놓고…日·레바논·프랑스 분쟁 조짐

입력 2020-01-03 17:28
수정 2020-04-02 00:02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사진)의 ‘일본 탈출’ 사건이 관련국 간 외교 분쟁으로 비화하는 모양새다. 곤 회장의 탈출 및 일본으로의 송환 요구에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는 일본과 레바논, 프랑스, 터키 등이 마찰음을 내고 있다. 출입국 검사가 까다롭기로 정평이 난 일본에서 곤 전 회장이 감쪽같이 빠져나가면서 각국 정부의 주권과 자존심이 얽히는 복잡한 상황이 불거졌다.

3일 AP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알베르트 세르한 레바논 법무장관은 일본 측이 요청한 곤 전 회장에 대한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수배 요청에 대해 “요청을 접수했으며 레바논 검찰이 관련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이어 “레바논과 일본은 범죄인 인도조약을 맺고 있지 않다”고 재확인했다. 이 같은 발언은 레바논 시민권을 지닌 곤 전 회장을 일본에 넘기기 어렵다는 뜻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레바논은 곤 전 회장이 유년기를 보낸 곳이다. 이곳에서는 성공한 기업인의 상징이자 거액을 기부했던 곤 전 회장의 인기가 높다. 곤 전 회장의 부인 캐럴 곤도 레바논 출신이다.

곤 전 회장의 일본 탈출 과정에 레바논 정부나 단체가 개입했을 것이란 의심도 이어지고 있다. 곤 전 회장이 레바논에 입국하기 열흘 전에 레바논 정부가 일본 정부에 그의 송환을 요청했고, 곤 전 회장이 베이루트 도착 직후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을 면담했다는 보도가 나온 점 등이 그 근거다.

레바논과 함께 곤 전 회장이 국적을 보유한 프랑스도 레바논을 지원사격하고 있다. 아녜스 파니에루나셰 프랑스 경제금융부 차관은 프랑스의 한 방송에 출연해 “곤 전 회장이 프랑스로 온다면 그를 (일본으로)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라며 “프랑스는 국민을 외국으로 송환하지 않으며 이런 원칙은 다른 모든 프랑스인과 마찬가지로 그에게도 적용된다”고 강조했다.

곤 전 회장을 태운 자가용 비행기가 일본을 빠져나간 뒤 1차 목적지이자 경유지였던 터키는 곤 전 회장의 도주를 도운 혐의로 7명을 체포해 조사에 들어갔다.

한편 곤 전 회장은 홍보회사를 통해 “아내 캐럴과 다른 가족들이 나의 일본 탈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언론 보도들은 잘못된 것”이라며 “내가 혼자 계획했다”고 주장했다. 곤 전 회장의 이 같은 발언은 부인에게 쏠릴 관심과 법적 책임을 막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 언론들은 도쿄지검이 곤 회장의 일본 자택 근처 폐쇄회로TV(CCTV)를 분석한 결과, 지난달 29일 낮에 곤 전 회장이 혼자 외출하는 장면이 마지막으로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보도가 사실일 경우 지난해 크리스마스 저녁에 악기 상자에 숨어 자택을 빠져나왔다는 레바논 언론의 보도는 틀린 것이 된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