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부처들은 어제 일제히 시무식을 열었습니다. 새해 포부를 밝히고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자리였지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전체 공무원이 참석하는 게 관례입니다.
우리나라 경제부처 장관들의 신년사를 보면 유사한 특징이 나타납니다. 평소 듣기 어려운 사자성어를 끼워넣고 있지요. 메시지를 선명하게 드러내려는 의도와 함께 엄숙성을 부각시키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연설문을 작성하는 사무관들이 적절한 사자성어를 고르기 위해 매번 애를 먹는다고 합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신년사에서 어려운 사자성어를 두 개나 꺼냈습니다. 사변독행(思辨篤行)과 연비어약(鳶飛魚躍)입니다. 각각 중용 및 시경에 나오는 말이라고 합니다.
사변독행은 매사에 신중히 생각하고 명확히 변별하며 성실하게 실행하라는 뜻입니다. 공직자들이 1년 내내 가슴에 담으라는 게 홍 부총리의 주문이지요.
연비어약은 조화로움과 이치에 따름을 강조한 말입니다. 원래는 ‘솔개의 하늘솟음, 물고기의 수면차기와 같이 힘찬 기상’을 뜻한다고 합니다. 갈등 현안들이 조화와 이치에 따라 술술 풀리고 솔개, 물고기처럼 경기가 반등·도약하기를 고대한다고 했습니다.
역설적이지만 홍 부총리는 이 사자성어를 통해 우리 사회에 갈등이 심각하고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는 점을 드러냈습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후한서의 유지경성(有志竟成)을 힘줘 말했습니다. 올바른 뜻을 갖고 노력하면 반드시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 장관은 “단 하나의 일자리라도 더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이라고 했습니다. 역시 청년 실업 등 고용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듯합니다.
김현준 국세청장은 필작어세(必作於細)를 들고 나왔습니다. 노자의 도덕경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큰 일은 결국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는 말이지요. 비범함과 평범함,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힘은 작은 차이(detail)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국세청은 올해 ‘세입 기반 확충’을 첫 번째 과제로 꼽고 있습니다. 국가 재정이 어려운 만큼 최대한 세원을 발굴하고 탈세를 잡겠다는 것이죠. 김 청장의 신년사는 이런 목표를 ‘세심하고 꼼꼼하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됐습니다.
장관급인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중국 고서 ‘회남자(淮南子)’ 중 한 구절을 인용했습니다.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으면 천하를 가질 수 있지만 자기에게만 의존하면 제 몸 하나 보존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국민의 집단 지성과 함께 할 때만이 공정위가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다는 걸 표현했다고 합니다.
‘경제 검찰’로 불리는 공정위가 국정 과제인 ‘공정 경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민 여론에도 신경을 쓰겠다는 의도로 읽힙니다.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사자성어는 아니지만 세종대왕의 ‘밥은 하늘’이란 발언을 끌고 왔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밥을 짓는 게 바로 농업이란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겁니다.
각 경제부처 수장들의 연설문에 필수로 등장하는 사자성어. 국민 소통을 위해 이젠 좀 줄여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