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경제원로의 쓴소리 "국가위기 상황인데 비전조차 없어…"

입력 2020-01-02 17:33
수정 2020-01-03 09:16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재단법인 여시재 이사장)와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이 2일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규제 개혁에서 허송세월하고 국가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전례없는 위기에 처했다는 비판이다. 정부 경제정책 방향이 단기적인 경기 부양과 재정 지출에만 매몰돼 있다고 한목소리로 지적했다.

이 전 부총리는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 금융감독위원장을 맡아 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고 2000년 재정경제부 장관,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서강대 석좌교수인 김 원장은 2018년 말까지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의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지냈다.

이 전 부총리는 이날 여시재 인터뷰에서 “올해 우리나라 경기가 지난해보다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하면서 “빨리 낙후 산업을 전환하고 혁신 산업을 육성하는 등 미래 먹거리를 찾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반등의 계기도 찾지 못하고 2019년이 지나가버렸다”며 “경제를 턴어라운드(재구조화)하지 못하면 시간과 재원만 낭비하는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부총리는 “지난해 경기가 예상보다 좋지 않았던 것은 정부 대응이 적절치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은 경기 변동상의 위기이자 3차 산업혁명에서 4차 산업혁명으로 넘어가는 패러다임 전환의 위기가 중첩된 상황”이라며 “이런 복합 위기에 대한 인식 없이 확장 재정만 쓰다보니 일자리와 소득, 소비를 늘리는 데 실패했고 무엇보다 기업의 투자를 자극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있어 정부가 단기적 경기 부양과 복지 확대를 위한 지출을 더 늘릴 것이란 게 이 전 부총리의 예상이다. 그는 “공적 부담만 키우고 실물경기는 살리지 못했다”며 “올해 경제가 상당히 어려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 전 부총리는 정부의 정책 전환과 야당의 대안 제시를 동시에 촉구했다. 그는 “국민들은 문재인 정부가 어떤 정책을 갖고 어느 방향으로 가려는지 헷갈려 하고 있고, 야당은 정부 정책에 반대만 하고 있다”며 “그런 점에서 문 정부는 깜깜절벽이고 야당은 더 답답하다”고 꼬집었다. 또 “정부는 기업 혁신, 사회적 혁신을 막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특히 내부의 자기 기득권 때문은 아닌지 우선적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도 이날 페이스북에 띄운 글에서 산업 구조조정에 대한 정부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작년 수출이 10년 만에 두 자릿수(-10.3%)로 감소했는데 이는 대외 환경 탓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 하락의 결과라는 것이다. 김 원장은 “수출은 한국 경제의 젖줄이자 생명선인데 서서히 약해져왔다”며 “중국은 메모리 반도체와 5G(5세대) 이동통신 등을 제외하곤 우리 산업 경쟁력을 넘어섰고, 인도 역시 곧 우리를 앞지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원장은 수출 부진의 근본 원인으로 내부 요인을 지목했다. △생산성을 초과하는 임금 상승에 따른 원가경쟁력 약화 △산업 구조조정 부진으로 유망 먹거리 산업 부재 △기술·인력·제도의 국제 경제질서 적응 실패 등이다.

김 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이 군소정당과 연합해 선거법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법을 통과시킨 정도의 의지만 있으면 수출 부진의 원인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무역 1조달러 돌파를 자화자찬하다니…”라고 말했다. “(외환위기 직전이던) 1997년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잔치가 떠오른다”고도 했다. 앞서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일 신년사에서 “어려운 대외 여건에서도 3년 연속 무역 1조달러라는 기념비적 성과를 이뤄냈다”고 평가했다.

김 원장은 지난달 29일엔 급증하는 공공부채에 대해 경고성 발언을 내놨다. 그는 “국민이 세금으로 부담해야 할 공공부채가 70도의 기울기로 급증할 상황”이라며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근거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통계를 오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국가부채비율을 계산할 때 최소치인 국가채무(D1)를 사용하면서 OECD의 경우 최대치인 가중평균치와 비교했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가계부채가 위험 수위에 도달했는데 국가를 지탱할 마지막 보루인 재정을 함부로 다뤄서야 되겠느냐”며 “향후 엄청난 세금 부담을 떠안게 될 젊은 세대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했다.

고경봉/조재길 기자 kgb@ha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