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세계 최고 과학잡지 ‘네이처’는 한국 연구팀이 주도한 ‘아시안 게놈(유전체)분석’ 논문을 커버스토리로 소개했다. 이 논문은 아시아 전 지역의 142개 소수 고립 부족의 게놈 DNA를 분석한 최초의 대규모 아시안 게놈 데이터다. 현재 80% 이상의 게놈 데이터가 백인들을 분석한 것이다 보니 45억 아시아인의 질병 예측이나 약물 효과 분석을 하기 위한 아시안 게놈 빅데이터의 수요는 수직상승 중이다.
이번 분석의 특징은 국가 주도 연구와 달리 순수 민간 국제 컨소시엄인 ‘게놈아시아100K(GA100K)’ 주도로 수행된 점이다. GA100K는 2015년 정상 및 질병 상태의 10만 명 아시안 게놈분석을 목표로 설립됐다. 핵심 기관으로는 한국의 마크로젠, 싱가포르의 난양기술대, 인도의 메드지놈이 참여하고 있다. 연구를 주도하는 과학자문위원회는 필자(서울대 분당병원)와 S 슈스터 난양대 교수가 공동으로 책임을 맡고 있다.
보건의료 분야의 4차 산업혁명은 이미 시작됐다. 빅데이터 확보가 첫 관건이다. 게놈연구 선진국인 미국은 이번 GA100K의 연이은 아시안 게놈 데이터베이스(DB) 발표를 환영하는 동시에 경계하고 있다. 물론 모든 데이터는 다른 연구자들을 위해 학계에 전부 공개하고 있다. 문제는 속도다. 먼저 분석에 성공한 그룹이 다음번 대규모 분석에서도 우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의 여러 장점 중 하나는 북방계 아시아인 데이터가 어떤 논문보다 충실하다는 것이다. 몽골에서 고립 부족 연구로 확보한 한국팀의 가족코호트(연구집단)는 전 세계에 유일한 북방계 아시아인 코호트다. 몽골을 중심으로 한 북방계 아시아인은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남방계 아시아인인 중국의 한족과도 구별된다. 네이처 측이 시료 비율에서 중국인 비중이 작음에도 불구하고 몽골인, 한국인, 일본인 데이터로도 아시아인 게놈분석으로 인정해주고 표지 논문으로 선정해준 부분도 ‘아시아는 중국’이라는 그동안의 관례가 개선되는 징표라 볼 수 있다.
순록치기 부족으로 아직도 고산 유목생활을 하는 몽골 차탕부족 DNA에서 백두대간을 타고 한반도로 유입된 한민족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몽골, 만주 그리고 북한을 잇는 북방계 DNA 이주 루트를 밝혀내고, 인도에서 한반도를 연결하는 남방계 DNA 이주 루트도 찾아내야 한다. 이를 아시아인들의 질병 정보와 연결시킨다면 3년에서 5년 이내에 한국은 아시아 정밀의학의 대표적 허브가 될 것이다. 새해에 이만한 소망이 또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