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선거' 가이드라인도 없는 韓…日은 준비만 1년

입력 2020-01-01 17:05
수정 2020-01-05 09:02
올 4월 15일 치러지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사상 처음으로 투표를 한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지난달 27일 국회를 통과하면서 선거 연령이 ‘만 19세 이상’에서 ‘만 18세 이상’으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만 18세 이상 고3 학생의 정당 가입과 선거 운동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학생의 정치 활동 허용 범위와 선거 교육 방식을 두고 학교 현장에서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총선이 불과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교육당국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처럼 선거 연령을 만 18세로 낮추면서 가이드라인 제작과 교육에 1년 동안 공을 들인 일본과 대조적이라는 지적이다.


고3 수험생 5만 명 ‘첫 투표권’

새해 학교 현장에서 가장 큰 이슈는 만 18세로의 선거 연령 확대다. 일부 고3 학생에게 투표권이 처음으로 주어진 것이다. 21대 총선에서는 선거일 기준 만 18세가 되는 2002년 4월 16일 이전 출생자에게 투표권이 주어진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로 추산하면 고3 학생 중 약 5만 명이 해당된다.

교육계에선 고3 학생의 선거권 확보를 두고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진보 진영은 꾸준히 청소년의 참정권 확대를 요구해온 만큼 이번 선거 연령 하향을 반기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지난달 30일 성명서를 내고 “선거 연령 하향은 민주시민 양성이라는 교육 목표와 시대적 과제에 부합하는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6개국 가운데 선거 연령이 18세를 넘는 나라가 한국밖에 없다는 점도 선거 연령 하향의 주요 근거로 거론됐다.


반면 헌법에서 요구하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 훼손될 것으로 우려하는 시각도 만만찮다. 보수 성향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선거법 개정으로) 교실의 정치장화가 예상된다”며 “선거운동을 하는 소수 학생들로 인해 선거권이 없는 다른 학생의 학습권 침해도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반발했다. 지난달 2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선거 연령을 18세로 낮추는 데 찬성(44.8%)과 반대(50.1%) 비율 차이가 오차 범위 내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 연령 하향을 두고 찬반 양론이 팽팽하다는 의미다.

日은 고3 투표권 행사 준비만 1년

학생들의 선거 참여는 정해졌지만 학교 현장에선 선거 교육 매뉴얼이 전혀 준비돼 있지 않다. 서울교육청이 총선에 대비해 오는 1학기 40개 학교에서 모의선거 교육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40개 학교 가운데 고등학교는 19곳에 불과하다. 또 교육감과 교사의 정치적 편향성을 두고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중앙정부 차원의 선거 교육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교육부는 “선거관리위원회와 협업해 1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제때 가이드라인을 제시해도 개학 이후 총선까지 1개월 남짓한 시간밖에 없어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하겠냐는 우려도 크다. 교육계에선 학교에서 선거 운동이 가능한 장소가 어디인지, 학생 사이의 인기 투표도 선거법에 저촉되는지 여부를 두고 모호한 점이 많아 학교에서 선거 사범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은 2015년 6월 선거 연령을 만 20세에서 만 18세로 낮추면서 법 시행까지 1년의 유예 기간을 뒀다. 이 기간 일본 문부과학성(교육부)은 고등학생의 정치 활동 및 선거 운동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2015년 10월 29일 발표했다. 한국의 행정안전부에 해당하는 일본 총무성도 문부과학성과 협력해 학생용 부교재와 교사용 지도서를 제작해 선거법 위반 방지 등 선거 교육을 실시했다. 일본 고등학생의 첫 선거는 선거법이 개정된 이후 13개월이 지난 2016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치러졌다.

고선규 일본 도호쿠대 교수는 2018년 발표한 논문에서 “총무성과 문부과학성이 공동으로 고교생 선거 교육 교재를 만들고 그 과정에 전문가들로 구성된 편찬위원회를 둔 것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지적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