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K] "실리콘밸리, 의자가 곧 회사 복지"…'블프' 사로잡은 K의자

입력 2020-01-02 08:28
수정 2020-01-03 13:49
# 시디즈는 신뢰할 만한 한국 의자 브랜드네요. 시디즈의 T80은 요추 지지대와 머리 받침대가 잘 작동해서 허리가 한결 편합니다.

미국 아마존에서 시디즈 T80을 구입한 현지 소비자가 남긴 평가다. 김경태 시디즈 상무는 지난 23일 인터뷰에서 "미국 재택 근무자들에게 시디즈의 T80이 각광을 받고 있다"며 "아마존에선 시디즈과 허머밀러나 스틸케이스 못지 않게 좋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미국 블랙프라이데이 시즌 시디즈의 매출은 2018년보다 5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 T50의 판매는 매출 확대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정확한 매출액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블랙프라이데이 프로모션 기간 T50은 전체 매출의 85%나 차지했다.



◆ 미국 오피스 공략…"의자가 곧 회사복지"

시디즈는 2018년 5월부터 아마존에 입점, 국내 인기제품 중 15개를 선별했다. 국내에서 인기 있는 의자가 미국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경태 상무는 "금융으로 커가는 싱가포르와 홍콩을 제외하면 한국의 산업생산역량은 전 세계 7~8위권"이라며 "우리나라 소비자도 글로벌 소비 수준을 갖추고 있다는 뜻으로, 한국 소비자에게 인기를 끈 제품이 해외에서도 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T50까지 판매한 이유는 재택 근무자를 공략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미국은 땅이 넓고 닷컴 기업이 많아지면서 재택 근무자의 비중이 높은 편"이라며 "집에서도 고기능 테스크 의자가 필요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김 상무는 "미국의 개인소비자가 지출하는 비용 중 제일 높은 비중이 주거비고, 두 번째가 의료 건강에 대한 비용"이라며 "그만큼 좋은 의자에 대한 소구가 많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수출용 의자도 모두 국내에서 생산한다. 미국에서 판매하는 의자는 국내보다 비싼 편이다. 그는 "물류 비용 때문에 미국에서 판매하는 의자는 국내보다 80% 가량 높은 편"이라며 "가성비가 좋은 의자로 입소문이 나면서 올해 매출이 빠르게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김 상무는 "아마존에 시디즈를 써본 소비자들이 좋은 평가를 댓글로 남기면서 빠르게 매출이 확대되고 있다"며 "낮은 반품율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강점"이라고 덧붙였다.

시디즈라는 브랜드 자체가 생소한 만큼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SNS에 브랜드 홍보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국내에서 '의자가 인생을 바꾼다'를 내세웠던 시디즈는 미국엔 'LIFE CHANGING CHAIR COMPANY(생활을 바꾸는 의자 회사)'로 나서고 있다.

미국 직장인들에게 의자가 회사 복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로 부상했다는 점을 감안했다. 최근 실리콘 밸리에선 입사 전 회사가 어떤 브랜드 의자를 제공하는 지 묻는 직원들이 많다.

그는 "연봉으로 6~7만달러를 받는 연구원들이 회사에서 어떤 의자를 제공하는 지도 사내 복지의 중요한 요소로 따지고 있다"며 "개인화가 강해지면서 회사가 주는 의자 외에도 자기가 선호하는 의자를 회사에 갖고오는 직원들도 많아지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 15만~30만회 테스트…미국 BIFMA 인증

이처럼 시디즈가 미국에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술력에 있다. 시디즈의 모회사인 퍼시스는 90년대 초반 한국 최초로 가구연구소를 운영했다. 시디즈는 2007년 퍼시스의 의자사업부에서 분리했다.

시디즈는 미국 가구생산자협회(BIFMA) 인증도 받았다. BIFMA는 미국 가구생산자협회 기준 테스트로, 전문적이고 엄격한 품질기준을 제시한다.

김 상무는 "비프마 기준은 엄청 까다롭지만, 이를 통과해야 메이저 시장에 들어갈 수 있는 기본기를 갖춘 것"이라며 "등판 강도 테스트도 15만~30만회 이상 거치는 등 내구성 실험도 진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비프마 기준을 통과한 의자는 하루 8시간 사용 기준으로 최소 5~7년 쓸 수 있다.

유럽에선 주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제조업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영업을 전개하고 있다. 김 상무는 "저희가 개발한 디자인으로 미국 스틸케이스나 KI라는 업체에 브랜드를 달고 나가고 있다"며 "내년 초엔 벨기에 지역에 물류센터를 운영하면서 해외에 더 빠르게 공급할 수 있도록 진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시디즈의 T50 제품은 유럽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김 상무는 "영국도 미국과 비슷한 규모로 T50 의자가 나가고 있고, 그 다음 많이 나가는 게 동유럽 체코와 폴란드"라며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도 제품이 꾸준히 잘 팔리고 있다"고 밝혔다.

2007년 출시된 T50은 국내외 총 200만개 이상 팔려 나간 상태다. 그는 "T50은 1분20초당 1대씩 팔리는 수준으로 과감하게 얘기하면 아시아를 대표하는 의자가 됐다"며 "T50을 따라한 카피 제품이 많이 나올 정도로 '명품 의자'라는 걸 입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2025년 해외매출 50% 확대 '목표'

지난해 중국 이커머스 시장에서도 성과를 거뒀다. 김 상무는 "지난해 9월 처음 티몰에 입점한 뒤 광군제 때 시디즈 의자 980개를 팔았다"며 "중국 이커머스에 처음 나선 해였지만 나름 의미있는 성과를 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시디즈는 2012년 중국 최대 사무가구회사 오로라와 합작 법인을 세웠지만, 지난해 독립법인을 따로 설립했다. 이커머스를 중심으로 온라인 시장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한 자녀 정책으로 현지 교육열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링고를 앞세우고 있다. 링고는 시디즈의 학생용 전문 의자 브랜드다. 시디즈는 의자 시장이 세분화될 것이라고 판단, 아이들의 성장 수준에 맞춰 사용할 수 있는 링고를 만들었다.

김 상무는 "가구 업계에서 유아동 가구는 스토케, 고띠에르 등 유럽 브랜드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지만, 저희는 그로잉(growing) 의자라고 해서 태어나서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앉을 수 있는 의자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링고는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10만개씩 팔릴 정도로 한국 학생의 3분의1 정도가 이용하고 있다"며 "이미 국내에서 기능을 인정받은 만큼, 중국에서도 주목을 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커머스 채널이 들어서면서 직장인용 의자, 학생용 의자가 아니라 세분화해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김 상무는 "중국 의자 시장은 총 12조원이지만, 이중 사무용 가구는 4조원 규모이며 수입의자 시장은 1000억원에 불과하다"며 "이커머스에서 활발한 개인 소비자를 겨냥해 더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올해는 징동닷컴에도 입점해 매출처를 확대하고, 일본에도 아마존을 통해 링고 제품을 판매할 계획이다.

미국과 중국에서의 성장세를 필두로 시디즈는 2025년 해외 매출 비중을 50%로 확대할 계획이다. 그는 "현재 해외 매출 비중은 200억원 정도로 전체 매출액 중 25%를 차지하고 있다"며 "좋은 제품으로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하면 시디즈를 선택하는 해외 소비자도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특히, 미국 시장에선 시장 점유율을 1%대까지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김경태 상무는 "시디즈는 현재 미국 시장에서 0.01%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데 1%만 되도 10배가 성장하는 셈"이라며 "한국을 대표하는 의자라는 사명감으로 해외에 더 널리 시디즈를 알리는 게 회사의 비전"이라고 강조했다.

고은빛 한경닷컴 기자 silverlight@hankyung.com
사진 = 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