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 한파를 뚫고 새해가 밝았다. 하지만 바람은 여전히 거세다. 지난해 한국 사회를 휩쓴 ‘정치 폭풍’과 ‘경제 격랑’은 새해에도 누그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온갖 억지와 꼼수가 정치판을 뒤흔드는 동안 경제는 휘청거렸고, 반(反)기업·반시장의 ‘올가미 규제’는 더 늘었다. 이념의 대립으로 사회가 분열된 데다 나라 밖 외풍까지 겹쳐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해 한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1.4%에 그쳐 36개 회원국 중 34위에 머물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 이후 최악이다. 미국은 감세와 친(親)기업 정책에 힘입어 명목 경제성장률이 4.1%로 높아지고 증시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은 29년 만에 최고의 닛케이지수로 연말을 장식했다. 명목 경제성장률도 1.6%로 높아져 1962년 이후 57년 만에 한국을 앞선 것으로 추정됐다. 올해는 도쿄올림픽 특수까지 더해져 성장 전망을 더욱 밝게 하고 있다.
이런 선진국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새해에도 온갖 바람에 휘둘릴 전망이다.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싸움이 격화되고, 한반도 주변 열강의 패권 다툼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핵 위협 속에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고 기업 투자가 위축되면 경제의 주름살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67주년을 맞은 한·미 동맹도 위태롭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년 내내 대선 행보에 집중할 것이고, 주한미군 방위비 압박은 거세질 것이다. 상반기 방한 예정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어떤 청구서를 들이밀지 모른다. 외교 전문가들이 “최선의 결과를 희망하되 최악의 상황도 대비하라”고 조언하는 의미를 곱씹어봐야 할 시점이다.
위기는 기회의 다른 이름이다. 바람이 거세고 어둠이 짙을수록 희망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 정호승 시인은 “새들은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부는 날 집을 짓는다”고 말했다. 어떤 위기에도 견딜 수 있는 둥지를 짓기 위해서는 비바람과 태풍을 잘 이겨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경제와 안보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 나라 안팎의 거센 시련을 극복하고 그 어느 때보다 튼실한 집을 지어야 한다.
더욱이 올해 첫날은 한 해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미래 10년을 준비하는 새로운 연대의 출발점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