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여름날 방치된 차 안에 쓰러져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아이를 구하기 위해 경찰관이 망치로 차 유리를 부쉈다고 해서 ‘손괴’라고 비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흉기를 든 범인으로부터 인질을 구하기 위해 경찰봉으로 범인의 손목을 때려 흉기를 떨어뜨렸다. 그 충격으로 범인의 팔뼈가 부러졌다면 어떨까? 긴급한 상황에서 공권력의 불가피한 강제력 행사를 비난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아이를 유괴한 후 돈을 요구하던 범인을 체포했는데 범인이 아이의 행방을 알려주지 않는다. 아이가 어딘가에 묶인 채 숨겨져 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의 생명에 대한 위험은 급증한다. 범인은 허위진술만 거듭하며 시간을 끌고 있다. 담당 경찰관은 아이의 행방을 실토하지 않는 경우 신체적 고통을 가하겠다고 위협했고, 범인은 곧바로 이미 아이를 살해했다는 사실과 시체를 유기한 장소를 자백했다. 이것은 독일에서 실제 발생한 일이다. 이 사건을 다룬 영화도 여러 편 제작됐다.
범인에게는 무기징역형이 선고됐지만 경찰관의 고문 위협이 문제가 됐다. 당시 경찰관은 의사의 입회하에 상처나 후유증은 없더라도 심한 신체적 고통을 주는 방식의 고문을 계획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일이 알려진 후 의사협회는 그런 고문에 협조하거나 입회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여론이 들끓으며 격렬한 찬반논쟁이 일어났다. 여론 조사 결과는 경찰관의 입장을 지지하는 견해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해당 경찰관을 기소하기를 주저하다가 뒤늦게 더 가벼운 강요죄로 기소했다. 재판 과정에서 해당 경찰관은 자신의 행동이 아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불가피한 ‘강제적 조치’였다고 변명하며 고문이나 협박이라는 표현을 거부했다. 재판 결과 피고인 측 주장이 배척됐고 유죄가 인정됐지만, 벌금형이 선고됐다.
많은 지식인, 학자, 정치인, 관료들이 경찰관의 입장을 지지했다. 경찰관의 행위는 형사소송법의 지배를 받는 수사과정이라고 볼 수 없고 공중의 안전과 치안질서 유지를 위한 방호조치로써 마땅히 허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공중(公衆)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긴급조치가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편, 반대편에서는 고문은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는 범죄행위이며, 고문의 개념을 자의적으로 좁게 해석하는 것은 명백히 유엔고문방지협약 위반이라는 점이 지적됐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미명하에 독일의 군대와 경찰에서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고문이 자행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미국은 9·11 테러를 겪은 후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아부 그레이브 수용소와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행해진 고문과 인권침해가 알려지며 국제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미국 법무부가 작성해 중앙정보국(CIA), 국방부, 백악관 등에 제공한 법률검토 의견(‘고문메모’로 통칭됨)은 정보 취득을 위해 일정한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가 법적으로 허용되는 신문기법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부시 행정부에 의해 설립된 특별군사재판소가 강제 수용된 사람들의 테러 음모 혐의를 재판했다. 변호인들은 특별군사재판소가 위헌이고 법과 조약에 정해진 보호가 결여됐다며 연방법원에 인신보호를 요청했다. 많은 쟁점이 치열하게 다퉈진 결과 최종적으로 연방대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연방법원에 관할권이 있으며 미국의 통일군사재판법과 제네바협약이 적용된다고 판결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선 후 고문메모는 폐기됐고 관타나모 수용소도 폐쇄하도록 했지만, 후임 트럼프 대통령은 관타나모 수용소를 유지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 문제를 둘러싼 논쟁은 길고 치열했으며 아직 끝나지 않았다.
테러가 계획되고 있다는 분명한 징후가 있을 때 수많은 사람의 희생을 막기 위해 관련자를 고문하거나 자백 약물을 투여해서라도 정보를 취득하는 것은 허용될까? 테러범에게 공중 납치된 비행기가 테러의 수단으로 사용될 것으로 믿어지는 경우 더 많은 피해를 막기 위해 그 비행기를 격추하는 행위는 허용될까? 아이가 납치돼 생명이 위험할 때 납치범을 위협해 아이를 구하려는 행위는 허용돼야 할까?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은 쉽지 않지만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문제는 제기되고 있다. 우리는 답을 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