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의 한 시사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시민단체인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을 '종북세력 5인방'으로 표현한 것은 명예훼손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30일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채널A와 조영환 종북좌익척결단 대표를 상대로 낸 민언련의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였던 원심을 뒤집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앞서 2013년 5월 6일 조 대표는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에 출연해 "민언련은 종북세력의 선전·선동 수단이 아니었는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민언련은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파괴, 국가보안법 철폐, 우리나라의 안보를 해치는 일련의 선전·선동을 줄기차게 해왔다"라는 취지로 발언했다.
채널A는 이 방송서 '긴급진단 종북세력 5인방'이라는 문구가 써진 게시판서 종이 1장을 떼어내 민언련의 명칭을 보여줬다.
이에 민언련은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인격권을 침해했다"며 1억 원의 손해배상과 정정보도를 청구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1심은 해당 방송이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민언련에 대한 이념 검증에는 공익성이 있어 위법성이 조각된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그러나 2심은 명예훼손이 인정된다며 1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다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종북의 의미를 객관적으로 확정하기 어렵고, 해당 방송의 종북 표현은 의견 표명임으로 사실 적시가 아니기에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표현행위로 인한 명예훼손 책임이 인정되려면 사실을 적시함으로써 명예가 훼손됐다는 점이 인정돼야한다. 명예는 객관적인 사화적 평판을 뜻하므로 단순 '종북'이나 '주사파' 등 부정적 표현을 지칭했다고 명예훼손이라 단정할 수 없다"며 "평판이나 명성이 손상됐다는 점까지 증명해야 명예훼손 책임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종북의 의미를 객관적으로 확정하기 어렵다"며 "종북이라는 표현은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대한민국 정체성과 정통성을 부정하는 반국가·반사회 세력'이라는 의미부터 '북한에 우호적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 '정부 대북강경정책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보이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민언련은 사회적으로 알려진 언론시민단체다. 언론과 관련한 국민 관심 사안에 관해 꾸준히 입장을 밝혀 언론이나 타인으로부터 공적인 반응이 나오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는 단체"라며 "민언련의 활동과 표명한 입장 등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 기초한 광범위한 문제제기가 허용돼야 할 필요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10월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가 자신들을 '종북'이라고 평한 보수 논객 변희재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종북이라는 표현은 단순 의견표명에 불과하다"는 판결 이후 대법은 줄곧 종북 관련 사건에서 명예훼손 성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배성수 한경닷컴 기자 baeb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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