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전기요금 특례할인 없앴다

입력 2019-12-30 18:07
수정 2020-10-27 15:48

한국전력이 전통시장 할인, 전기자동차 충전 할인, 주택용 절전 할인 등 특례할인 세 가지를 내년 1월 1일부로 사실상 폐지한다. 탈(脫)원전 여파 등으로 올 상반기 9000억원 넘는 손실을 기록한 한전이 재무구조 개선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한전은 30일 정기 이사회를 열어 이런 내용의 전기요금 특례할인 개편 방안을 의결했다. 특례할인은 사회취약계층이나 중점 지원 산업 등을 대상으로 전기요금을 깎아주는 제도다. 전기를 아껴 쓴 주택 거주자를 대상으로 10~15%의 요금을 할인해 주는 주택 절전 할인은 바로 종료된다. 약 182만 가구가 종전의 할인 혜택(작년 기준 288억원)을 받지 못할 전망이다.

전기차 충전 및 전통시장 할인은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하반기부터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했다. 당초 일괄 종료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해 늦췄다는 후문이다. 한전이 이번 3종의 특례할인 폐지를 통해 내년에 감축하는 비용은 약 590억원으로 추산됐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脫원전 탓에 적자 내몰리자…가정용 절전 할인까지 없앤 한전

“한국전력의 올해 정책비용이 (현 정권 출범 이전인) 3년 전보다 3조원 늘어난 7조8000억원에 달한다. 부채가 쌓이면 훗날 국민 부담으로 돌아간다.”

김종갑 한전 사장은 지난달 6일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빅스포 2019’ 행사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올해 한전 재무 상황이 6년 만에 적자를 냈던 작년보다도 어렵다”고 했다. 한전의 경영 악화를 해소하기 위해선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예고한 것이다. 한전이 30일 정기 이사회에서 ‘주택용 절전’ 등 연내 일몰되는 특례할인을 원칙적으로 종료하기로 한 것도 전기요금 인상의 신호탄이란 분석이다.


“모든 특례할인 폐지가 원칙”

한전 이사회가 이날 연장 여부를 검토했던 특례할인은 주택용 절전과 전기차 충전요금, 전통시장 할인 등 세 가지다. 이 중 직전 2년간의 같은 달 평균 전력량 대비 20% 이상 절감한 고객을 대상으로 10~15% 깎아주던 주택용 절전 할인은 내년 1월 1일부터 종료된다. 작년 기준 181만7000가구에 총 288억원의 혜택을 줬던 항목이다. 올해 지원액은 450억원으로 추정됐다.

전기차 충전 및 전통시장 할인의 경우 원칙적으로 폐지하되 6개월 시한을 두기로 했다. 내년 4월 총선이 있는 만큼 유예기간을 둬야 한다는 여당의 강력한 주문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은 내년 상반기까지 전기차 충전 할인을 유지하되 하반기부터 2년에 걸쳐 할인 폭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기로 했다. 2022년 6월 완전 일몰된다.

전통시장 할인 역시 내년 6월까지 지속한 뒤 폐지한다. 대신 한전이 향후 5년간 285억원을 직접 전통시장에 투입하기로 했다. 영세 상인을 보호한다는 취지다. 지원액은 기존의 전통시장 전기요금 할인액(연간 약 25억원)의 두 배 수준이란 게 한전 측 설명이다. 구체적인 지원 방식은 한전이 중소벤처기업부, 전국상인연합회와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할 방침이다.

정부와 한전은 종료 시한이 다가오는 다른 특례할인도 원칙적으로 폐지하기로 했다. 내년 12월 에너지저장장치(ESS) 충전(작년 할인액 1831억원) 및 신재생에너지 전력요금 할인(199억원), 2024년 12월 도축장 할인(175억원) 등이 대표적이다.

탈원전에 사회적 비용까지 급증

한전이 특례할인 폐지에 나선 것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만큼 재무구조가 나빠져서다. 2016년 12조15억원(연결재무제표 기준)에 달했던 영업이익은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시작됐던 2017년 4조9532억원으로 급감했고 작년엔 6년 만에 적자(-2080억원)로 돌아섰다. 올 상반기에도 9285억원의 영업 손실을 냈다.

부채비율도 급증세다. 2016년 말 143.4%에서 올 상반기 176.1%로, 2년6개월 만에 30%포인트 넘게 뛰었다. 예년에 평균 85% 안팎에 달했던 원전 이용률이 작년 65.9%까지 곤두박질친 데다 원전의 대체 발전원인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급등한 게 결정타였다는 분석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한전공대 설립 등 한전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도 크게 늘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한전의 특례할인이 정권 필요에 따라 추가되면서 누더기가 됐던 건 사실”이라며 “다만 한전이 한계 상황에 몰린 지금 없애는 건 전기요금 인상을 위한 꼼수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내년 7년 만에 전기요금 올릴 듯

정부와 한전이 내년 총선 이후 전기요금 인상을 본격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전은 지난 7월 “지속가능한 요금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필수사용량 보장공제 제도 개선 등을 포함한 전기요금 개편안을 내년 상반기까지 마련할 것”이라고 공시했다. 필수사용량 보장공제는 전력 사용량이 월 200㎾h 이하인 저소비층에 월 4000원씩 요금을 깎아주는 제도다. 이 제도를 폐지하는 건 실질적인 전기요금 인상을 의미한다.

내년엔 한전이 전기요금을 5%가량 올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한전의 재무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며 “내년 상반기 한전이 요금 개편안을 마련하면 관련 절차에 따라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전이 1%만 전기요금을 올려도 국민·기업 부담이 약 5000억원씩 늘어나는 구조다. 한전이 마지막으로 요금을 올린 것은 2013년 11월이다. 당시 주택용 2.7%, 산업용 6.4% 등 평균 5.4% 인상했다.

조재길/구은서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