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현모 KT 차기 CEO 내정자는 '속도전의 명수'…LG에도 LTE 밀리자, 한달 만에 서비스해 만회

입력 2019-12-29 18:07
수정 2019-12-30 01:50
2011년 12월 초 KT그룹 안팎에 위기감이 감돌았다. 차세대 통신 LTE 서비스 개시에 차질이 빚어져 경쟁사들에 비해 반년 이상 뒤처졌다. 이동통신 3위인 LG유플러스에도 밀릴 위기였다. 통신 세대교체기엔 초기 가입자 모집 성적이 이후 경쟁에서의 성패를 가르기 때문이다.

긴급 경영진 회의가 소집됐다. 이 자리에서 구현모 당시 개인고객전략본부장은 “당장 전담부서를 구성해야 한다”며 그 자리에서 명단을 발표했다. “후발주자는 속도전으로 승부해야 한다”며 밀어붙였다. KT는 한 달 만에 LTE 서비스를 시작했다.

구현모 KT 차기 최고경영자(CEO) 내정자(55)가 그룹 안팎에서 ‘강한 추진력을 갖춘 최고 전략가’로 통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일화다. 첫 직장인 KT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32년 만에 CEO에 올라 ‘샐러리맨 신화’를 쓴 그는 KT그룹 내 사정에도 밝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구원으로 입사한 후 위기 대응 빛나

1964년생인 구 내정자는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경영과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7년 KT경제경영연구소 연구원으로 입사한 이후 32년 동안 KT에서만 근무했다. 경영전략 담당, 비서실장, 경영지원총괄 사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9년 KT 그룹전략1담당 상무보 시절에는 당시 최대 현안인 KT와 KTF의 합병을 주도했다. 지난해 11월부터는 커스터머&미디어 부문장을 맡았다. KT 핵심 사업인 유·무선 통신과 콘텐츠·미디어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KT는 올해 또 어려움을 겪었다. 유료방송 경쟁 업체인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가 잇달아 케이블TV업체인 CJ헬로(현재 LG헬로비전), 티브로드를 인수해 몸집을 불렸지만 KT는 정부 규제(유료방송 합산규제)에 막혀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지난달 “우리만의 길을 가겠다”며 KT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즌’ 강화로 대응했다.

그는 ‘소통왕’으로도 통한다. 그룹 내 고위직에 있으면서도 소탈하고 권위에 얽매이지 않는 성격으로 직원들의 신망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부하 직원들과도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는 스타일이라는 것이 KT 관계자들의 말이다.

2년 만에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도

구 내정자는 2014년 황창규 회장 체제가 시작된 뒤 비서실장으로 발탁됐다. 이후 2014년 12월 부사장, 2017년 1월 사장으로 승진했다. 2년 만에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해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다.

황 회장 취임 이후 초고속 승진해 황 회장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일각에선 ‘낙하산 인사’가 ‘적폐 후계구도’로 바뀐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김종구 KT 이사회 의장은 “현재 CEO(황창규 회장)는 (구 내정자를 선정한) 이사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고 부인했다.

지난 27일 이사회는 수차례 투표를 거쳐 구 내정자를 차기 CEO로 만장일치로 확정했다. 한 사외이사는 “첫 번째 투표에서 후보자 절반을 탈락시키고, 이후 투표를 통해 4명에서 3명, 3명에서 2명, 2명에서 최종 1명으로 좁혀나가는 방식으로 뽑았다”고 설명했다.

구 내정자는 1987년 KT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경영계 12위 그룹의 수장이 됐다. KT 관계자는 “구 내정자의 선출로 KT 모든 직원이 CEO가 될 수 있다는 꿈을 꾸게 됐다”며 “정부와 정치권에서 낙하산 인사를 보내기 어려운 지배구조의 틀을 닦은 것이 이번 인사의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