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세 직장인 A씨는 최근 화장품을 사면서 기부도 했다. 75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 ‘유나’가 서울 선유고 학생 동아리 ‘페르보르’와 함께 내놓은 화장품, 팔찌, 스티커 세트 상품을 인터넷에서 구입했다. 이들이 판매한 상품 수익금은 전액 저소득층 여학생에게 생리대를 지원하는 데 쓰인다. 유나는 지난 23일 이 캠페인으로 모은 수익금 1억원을 비정부기구(NGO) 굿네이버스에 기부했다.
A씨처럼 현금 대신 소비, 운동 등 재미있는 일상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기부를 하는 ‘퍼네이션(funation=fun+donation)’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기부금 액수보다 ‘어떻게 기부하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젊은 층의 수요에 맞춰 크라우드펀딩·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 등 기부 수단도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반면 전통적 방식의 모금 기부는 쇠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젊은 층 사이 자연스러운 기부 확산
젊은 층 사이에선 소비 자체가 기부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인조 모피 구매, 채식주의 등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맞게 소비하려는 성향이 기부형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 이를 겨냥해 유튜버 유나처럼 수익금을 특정 대상에 기부하거나 제품 한 개를 살 때마다 소외 계층에 기부하는 ‘1+1 마케팅’도 성행하고 있다.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크라우드펀딩’도 기부 소비를 확산시키는 대표적인 수단으로 꼽힌다. 크라우드펀딩 업체 텀블벅이 진행한 ‘기억나비 프로젝트’는 성공적인 기부 프로젝트 중 하나다. 참여자들에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기억하는 가죽 카드지갑과 팔찌를 증정하고, 수익금은 모두 기부하는 사업이었다. 한 가죽 디자인업체가 벌인 이 사업은 약 7400만원을 모아 텀블벅의 역대 기부 펀딩 중 두 번째로 많은 금액을 기록했다.
텀블벅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이 업체에서 개설된 기부 및 공익 캠페인 프로젝트는 527건에 이른다. 한 크라우드펀딩 업체 관계자는 “상업용 제품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도 일부 수익금을 기부하는 형태로 모금을 한다”며 “펀딩 참여자들은 수익을 올리면서 기부에 참여했다는 만족감까지 얻는다”고 설명했다.
걷기·독서 등 생활습관도 기부수단
스마트폰 앱을 활용한 ‘참여형 기부’도 인기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그린빈’, 굿네이버스의 ‘스텝포워터(Step for Water)’ 등은 시민들이 걷기와 달리기, 책읽기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포인트를 쌓아 원하는 프로젝트에 기부할 수 있다.
굿네이버스는 ‘스텝포워터’를 오프라인으로 연결해 2017년부터 마라톤 대회인 ‘희망걷기대회’를 열고 있다. 참가자들이 앱을 실행하고 걸으면 한 걸음에 1원씩 정산된다. 모금액은 깨끗한 물이 필요한 국가에서 우물과 화장실을 짓는 데 쓰인다.
스마트폰 잠금화면 등에서 광고를 보면 포인트를 주는 ‘리워드형 앱’을 통해서도 기부할 수 있다. 광고 플랫폼 ‘캐시슬라이드’를 운영하는 NBT는 지난달 캐시슬라이드 사용자의 누적 기부금이 11억원을 넘었다고 밝혔다. 사용자들이 광고를 보고 모은 포인트가 세이브더칠드런 등 NGO에 기부되는 방식이다.
“정기 기부로 정착시켜야”
‘퍼네이션’이 급부상하는 반면 전통적인 현금 기부에 대한 선호도는 떨어지고 있다. 통계청의 ‘2019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현금을 기부한 경험이 있는 사람의 비중은 24.0%로 2013년(32.5%)보다 8.5%포인트 줄어들었다. 경기가 불황인 데다 기부금 유용 사건 등으로 시민단체에 대한 불신도 커졌기 때문이다.
사랑의열매 관계자는 “초고액 기부는 늘어났지만 경제 불황과 양극화 여파로 소액을 기부하는 서민들의 참여가 작년보다 위축됐다”고 설명했다. 통계청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부를 하지 않는 이유로 응답자의 14.9%가 ‘기부 단체 등을 신뢰할 수 없어서’라고 응답했다. 대신 기부자가 기부금의 사용처와 용도를 직접 정하는 ‘지정 기탁’은 늘어나는 추세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정기부금단체 수는 2013년 2583곳에서 올해 4737곳으로 증가했다.
비정기적 기부인 ‘퍼네이션’을 지속적인 기부로 연결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철희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퍼네이션은 기부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층을 끌어들이는 데 효과적이지만 일회성이라는 한계가 있다”며 “퍼네이션을 통해 기부를 경험한 사람들을 월 정기후원 등 지속적인 기부로 유입시키는 방안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유정/배태웅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