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이상 고령자의 금융권 대출이 가파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은퇴자들이 새로운 소득처를 찾아 대거 자영업이나 부동산 임대업에 나서면서 빚을 늘린 데 따른 것이다. 급속한 고령화와 소비 둔화, 부동산 경기 하락이 맞물리면서 노인 빚이 한국 경제의 새로운 ‘뇌관’으로 작용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은행이 26일 국회에 제출한 2019년 하반기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가 본격화된 2017년 이후 지난 3분기 말까지 2년9개월간 60대 이상 고령자 대출은 연평균 9.9% 늘었다. 같은 기간 40대(3.3%) 50대(4.4%)와 비교하면 빚 증가 속도가 2~3배가량 빠르다. 2016년 4분기 11.6%에 달했던 전체 가계신용 증가세는 대출 규제 후 크게 둔화돼 지난 3분기엔 3.9%로 낮아졌지만 60대 이상 대출은 여전히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고령자 대출은 질적 측면에서도 심상치 않다. 2013년까지만 해도 60대 이상의 비은행권 대출 비율은 50% 미만이었지만 이후 계속 늘어 올해 역대 가장 높은 53.6%를 기록했다. 담보대출 비율도 84.7%에 달했다. 60대 이상이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를 부담해야 하는 데다 담보가치가 하락하면 상환 압박도 가장 크게 받는 셈이다.
문제는 한창 일할 나이인 30~40대에 비해 60대 이상의 소득이 현저하게 적다는 점이다. 연 소득 대비 가계대출 비중을 보면 30대 이하는 200%에 그치고 40대(215%), 50대(206%)도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60대 이상은 254%로 크게 뛴다. 70대 이상으로 한정하면 395%로 치솟는다. 70대 노인은 4년간 한 푼도 안 쓰고 일해야 빚을 다 갚을 수 있다는 얘기다.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노인 빚 부담은 점점 커지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기대수명 연장으로 노후 준비 필요성이 커진 고령자들은 자영업이나 부동산 임대업 등에 나서면서 사업 자금 조달을 위해 대출을 받는다. 소득이 적은 상황에서 대출을 받으려다 보니 은행 대신 저축은행 등 금리가 높은 비금융권을 찾게 되고 더 열악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여기에 소비 둔화, 인건비 증가 등에 따른 자영업 침체와 지방 부동산 경기 부진 등이 맞물리면서 대출이 더 부실화되는 양상이다.
자영업자 가계대출이나 부동산임대 사업자 부채를 연령대별로 보면 60대 이상 비중이 급증하고 있다. 전체 자영업자 대출 중 6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16.0%에서 매년 증가해 올해 역대 최고인 21.7%에 달했다.
취약차주 대출 규모도 60대 이상만 증가하고 있다. 2012년과 올해 3분기를 비교하면 전 연령대에서 수천억~수조원씩 줄었지만 60대 이상은 8조5000억원에서 14조5000억원으로 6조원 증가했다. 70대 이상은 3조원에서 6조6000억원으로 두 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