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출퇴근·휴식…공장 돌리면서 새로운 '시간'이 생겼다

입력 2019-12-26 18:53
수정 2019-12-27 00:59

“용광로에서 거품을 내며 끓는 쇳물을 지켜보는 일은 두 번 다시 만나기 힘든 흥미로운 경험이다.” 미국 소설가 너새니얼 호손(1804~1864)은 영국 리버풀에 있는 주물공장의 작업 공정을 지켜보며 감탄했다. 화가 조지프 스텔라(1877~1946)는 제철소가 많은 피츠버그를 “단테가 노래한 가장 요란한 지옥을 그대로 재현해놓은 것 같다”고 표현했다.

불은 프로메테우스가 인간 세상에 준 위대한 선물이다. 불로 강철을 만드는 제철업은 프로메테우스의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한 산업이다. 제철공장부터 거대한 방적기가 돌아가는 면직공장, 부품이 이동하고 정해진 공정을 반복하는 자동차 조립라인까지. 《더 팩토리》는 기계와 노동력이 어우러져 같은 모양의 제품을 끝없이 생산해내는 공장의 역사를 다룬다. 공장의 등장에서 파생된 생활의 변화와 새로운 사회 제도, 문화적 맥락까지 살펴 공장의 서사를 끌어낸다. 조슈아 B 프리먼 뉴욕시립대 퀸스칼리지 역사학과 교수가 썼다.

책은 산업혁명기 거대한 공장의 탄생에서 시작해 ‘21세기 폭스콘(대만 훙하이그룹 산하 정보기술 기기 제조사) 시티’까지 아우른다. 3세기에 걸친 공장의 변모를 역동적으로 그린다. 저자는 공장을 ‘한 공간에서 많은 사람이 외부의 힘으로 가동되는 장비를 이용해 함께 작업하는 방식’으로 정의한다. 대규모 공장은 18세기 영국에서 등장했고 19세기 미국으로 건너가 섬유와 철강산업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20세기 초 자동차산업을 일으켰고 2차 세계대전 후엔 소련과 사회주의 국가들을 흔들어놨다. 지금은 아시아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다.

공장은 단계별로 발전을 거듭하며 엄청난 양의 소비재와 생산재를 쏟아냈다. 제철업에서 프로메테우스를 떠올렸듯 공장은 인간의 야망과 업적을 상징했다. 공장의 출현으로 재화와 서비스가 증가했고 넉넉한 음식과 깨끗한 물은 인간의 기대수명을 늘렸다. 한편으로 공장은 고난과 갈등의 상징이기도 했다. 기아와 질병에선 벗어날 수 있었지만 오염은 대기의 온도를 바꿔놨다.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새로운 계급을 탄생시켰고, 세계를 이데올로기 투쟁의 장으로 만들었다.

공장의 등장으로 일상도 달라졌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시간의 발견’이다. 가내수공업을 할 땐 시간 개념이 뚜렷하지 않았다. 해가 뜨고 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지치면 쉬었다. 주관적인 시간 개념은 무용해졌다. 정해진 시간에 모두 함께 출근하고 일해야 했다. 공장주들은 종을 쳐 시간을 알렸다. 공장에서 장대로 창문을 두드려 정해진 시간을 알려주는 ‘노커업(knocker up)’이란 직업이 따로 있었을 정도다.

시기에 따라 변해가는 공장의 이미지도 인상적이다. 등장 초기에 공장은 ‘구경거리’였다. 19세기 시인 로버트 사우디는 공장을 ‘로마의 유적’에 비유했다. 1915년엔 하루 400명의 관광객이 미국 포드자동차 공장을 찾았다. 기계나 공장의 전경을 카메라에 담은 사진 작품들도 인기였다. 1930년대 대공황을 거치면서 공장의 이미지는 차갑고 삭막하게 변해간다. 공장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인간을 그린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가 대표적이다. 저자는 “‘모던 타임스’는 공황기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지만 물품을 대량 생산해내는 공장의 기본적인 성격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고 평가한다.

책은 공장이란 ‘축’을 중심으로 수면 아래에서 움직이는 거대한 흐름을 읽는다. 오늘날 우리가 일을 하고 생활하고 즐기고 다투는 방식에 공장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거대 공장은 미래를 찍어내는 거푸집이었다”는 문장은 “공장의 역사를 이해하면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어떤 종류인지 파악할 수 있다”는 서술과 연결된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어쩌면 거대 공장의 정점을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500쪽이 넘는 책 분량이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공장 시스템이 스며든 일상의 의미를 파악하고 싶고 진화하는 공장이 그려갈 미래가 궁금하다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