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아주 특별한 이사

입력 2019-12-26 18:41
수정 2019-12-27 00:24
독일 베를린의 페르가몬박물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거대한 규모의 페르가몬 제단이다. 가로 35.64m, 세로 33.4m짜리 이 제단은 터키에서 가져온 고대 건축물로, 19세기 독일 발굴단이 현지에서 분리해 하나씩 이송한 뒤 복원했다. 당시에는 마차와 수레로 이동하느라 부러지고 깨진 것이 많았다.

고대 유적을 옮기는 일은 까다롭기 짝이 없다. 자칫하면 원형을 훼손하기 십상이다. 이집트의 아스완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했던 람세스 2세 신전은 1963년부터 10년에 걸쳐 210m 떨어진 곳으로 옮겨졌다. 유적을 하나하나 해체한 뒤 옮기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고, 비용도 4000만달러 넘게 들었다.

요즘은 문화유적을 통째로 이전하는 첨단기법이 동원되고 있다. CJ대한통운의 중동지역 물류 계열사인 CJ ICM은 최근 ‘무(無)해체 통운송’ 기술을 활용해 터키 고대 도시 유적 23개를 무사히 옮겼다. 이번 작업에는 바퀴가 수백 개 달린 특수장비인 모듈 트랜스포터 88대가 동원됐다. 진동을 최소화하는 초저속 운송으로 무게 1500t짜리 목욕탕을 3㎞ 움직이는 데 9시간이 걸렸다.

고대 유적처럼 민감한 물건을 옮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진동을 줄이는 일이다. 1990년대 이후 상용화된 무진동 차량은 금속제 스프링이 아니라 압축공기를 활용한 에어 스프링으로 충격을 최소화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11년 프랑스에 보관돼 있던 외규장각 도서 75권을 인천공항에서 국립박물관으로 수송하는 데 무진동차를 이용했다. 2012년 과학기술위성 나로호를 대전 KAIST에서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까지 옮길 때도 활용했다.

건물 전체를 수평이동하는 기술도 날로 발전하고 있다. 2016년 경기 하남 구산성당을 200m 떨어진 구산성지 옆 새 부지에 원형 그대로 이전하는 데 성공했다. 2012년 스위스에서는 무게 6200t 규모의 옛 건물을 유압 장비와 철로를 이용해 수평이동하기도 했다.

이처럼 ‘특별한 이사’에는 첨단기술뿐만 아니라 뛰어난 인력과 오랜 경험이 필요하다. CJ대한통운의 ‘터키 프로젝트’를 주도한 CJ ICM은 두바이에 본사를 둔 중동 전문 물류기업으로 2017년 CJ대한통운이 합병한 회사다. 업계에서는 “이번 쾌거는 세계 37개국에 물류망을 확충한 CJ대한통운 ‘글로벌 혁신 전략’의 승리”라는 평가가 나왔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