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용역 결과를 최종 확인하고 있어 공식 발표하는 내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먼저 보도하면 안 됩니다.”
‘전국 노동조합 조직 현황’ 발표를 1주일가량 앞두고 고용노동부 관계자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1989년 노조 조직 현황을 조사하기 시작한 뒤 제1 노총의 순위가 뒤바뀐 건 올해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고용부는 1990년부터 매년 직전연도의 노조 조직 현황을 조사해왔다. 2010년까지는 매년 6월 공개했고, 이후 늦춰지더라도 10~11월을 넘긴 적이 많지 않았다.
예외 사례가 생긴 건 작년부터다. 10년 넘게 유지해온 10%대 초반의 노조 조직률이 한꺼번에 0.4%포인트 상승하자 12월 중순이 지나 결과가 발표됐다. 매년 0.1%포인트 정도 오르던 조직률이 한꺼번에 뛰면서 확인 작업에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이다.
올해는 발표 시기가 더 늦어졌다. 조직률 상승 폭(1.1%포인트)도 유례없이 컸지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을 제쳤다는 초유의 조사 결과가 나와서다.
예상하지 못한 조사 결과를 받아든 고용부엔 비상이 걸렸다. 연구용역을 진행한 학회는 물론 내부에서도 극소수만 결과를 공유했다. “공식 발표 때까지 철저히 비밀을 유지하라”는 입단속에 들어갔다. 기자들에게는 “예년과 다른 내용이고 파장이 워낙 커 최종 확인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다” “의심 가는 부분을 일일이 확인 중인데 양대 노총의 조합원 수가 비슷해 결과가 바뀔 수도 있다”며 보도를 만류하기도 했다.
조사 결과 발표 이후에도 고용부는 고심에 빠졌다. 정부 산하 각종 위원회의 참여 비율을 높이라는 민주노총 ‘청구서’가 나왔지만 이렇다 할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다음달 21일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인 데다 자칫 민주노총을 적극 응대했다간 그간 한국노총을 중심으로 꾸려온 사회적 대화의 판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당초 전문가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친노조 정책 바람을 타고 급격히 세를 불리고 있는 민주노총이 올해 말쯤 한국노총을 제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럼 내년 말에나 그 결과가 공개된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꿈은 1년 앞당겨 실현됐다. 정부는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민주노총의 거센 입김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됐다.
“그동안 한국노총만 바라보고 노정(勞政) 관계를 꾸려온 정부가 정작 정책은 민주노총에 유리하게 펼쳐왔다. 결과적으로 한국노총을 제1 노총에서 끌어내리고선 당황해하는 모양새가 안타깝다.”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냉정한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