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중요한 국정 목표 중 하나가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존중받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정부도 노조 조직률을 높이기 위해 정책적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8월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불과 1년 만에 26만 명 가까운 새 조합원을 끌어들이며 제1 노총으로 ‘등극’한 데는 정부가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노총 1년 만에 26만 명 급증
2017년 말 기준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조합원 수는 87만2923명, 민주노총은 71만1143명이었다. 25일 정부가 발표한 지난해 말 기준 양 노총의 조합원 수는 한국노총 93만2991명, 민주노총 96만8035명이다. 불과 1년 만에 16만 명 차이가 뒤집혔다.
조합원 수 역전의 가장 큰 배경은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의 합법화다. 전공노는 해고자가 조합원에 포함돼 있어 법외노조 상태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전공노는 해고자를 조합원에서 제외하고 지난해 3월 고용노동부로부터 합법노조로 인정받았다. 6급 이하 공무원으로 구성된 전공노 조합원은 9만6000여 명이다.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도 민주노총에 ‘날개’를 달아줬다. 정규직 전환 과정에 조직화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대거 민주노총 산하 공공운수노조에 가입했다. 그 덕분에 공공운수노조 조합원 수(약 21만 명)는 민주노총의 핵심 세력인 금속노조(약 18만 명)를 넘어섰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현 정부 출범 이후 정규직으로 전환된 공공부문 근로자 20만 명 중 약 15만 명이 노조에 새로 가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 건설현장에서 양 노총 간 일자리 다툼이 심화되면서 약 2만 명이 보다 투쟁적인 민주노총에 가입했고, 네이버·넥슨·카카오 등 주요 정보기술(IT) 기업에 노조 설립 바람이 불면서 4000명이 넘는 근로자들이 민주노총에 들어갔다.
조직경쟁 격화 예고…산업현장 불안 우려
1995년 민주노총 설립 이후에도 굳건히 제1 노총 자리를 지켰던 한국노총이 밀려나면서 양 노총 간 조직 확대 경쟁은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이미 전국 건설현장 곳곳에서는 경기침체로 일자리가 줄면서 양 노총 조합원 간 물리적 충돌이 수차례 벌어졌다. 민주노총에 제1 노총 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포스코와 삼성전자에 ‘깃발’을 꽂은 한국노총은 고토 회복을 위해 총력전에 나설 계획이다.
그동안 한국노총을 중심으로 운영된 사회적 대화 등 노정 관계의 재설정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국노총이 민주노총에 밀린 것은 현 정부 들어 사회적 대화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당장 다음달 21일로 예정된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에서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면 한국노총도 대화가 아닌 투쟁 모드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
민주노총이 불어난 세를 내세워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기 등 정치투쟁에 나설 경우 산업현장 혼란도 우려된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한국노총은 실리적, 민주노총은 투쟁적이라고 알려져 있다”며 “외국계 기업들이 민주노총에 상당한 공포심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산업현장의 노사관계가 더 불안해질까 봐 우려된다”고 말했다.
공공·대기업 중심… ‘그들만의 리그’
지난해 말 기준 전국 노조 조합원 수는 233만1000여 명으로 전년보다 24만3000여 명(11.6%) 늘었다. 조직률은 11.8%로 전년 대비 1.1%포인트 급증했다. 내막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공공기관이나 대기업 소속 조합원이 절대다수다. 조직률만 놓고 보면 공공부문은 68.4%다. 공무원과 공공기관 근로자 10명 중 7명이 노조원이라는 얘기다. 반면 민간부문 조직률은 9.7%에 불과하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 정책 효과로 전체 노조원 수는 늘고 있지만 여전히 절대다수는 대기업과 공공부문 근로자로 구성된 그들만의 리그”라며 “특히 대기업과 공공부문 비중이 높은 민주노총이 제1 노총이 되면서 양극화가 더 심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