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수 기증자 있어도 이식 못 한다니…"

입력 2019-12-25 14:29
수정 2019-12-26 00:27
“일치하는 조혈모세포(골수·말초혈)가 없어 이식 수술이 안 된다는 얘기에 절망했는데 이제는 기증 희망자가 있어도 내년까지 기다려야 한다네요.”

지난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사연이다.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에 걸려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자를 겨우 모았는데 보건복지부의 기증자 정원이 찼다는 이유로 두 달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청원인은 “오매불망 일치하는 조혈모세포 기증을 기다리는 환자들은 내년까지 대기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백혈병·희귀병 환자의 ‘마지막 희망’으로 불리는 조혈모세포 이식이 ‘기증자 등록 정원’ 문제에 가로막혀 환자들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4년째 기증 희망자 등록 정원 ‘동결’

25일 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 등록자는 1만6931명이다. 이는 복지부의 조혈모세포 기증 지원사업 예산에 따라 정해진 인원이다. 정원 이후 신청자는 내년 2월부터 조혈모세포 기증을 등록할 수 있다.

환자가 기증 희망자로부터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으려면 기증자와 조직적합성항원형(HLA)이 일치해야 한다. HLA가 일치하는지 알기 위해선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센터에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 등록을 한 뒤 대한적십자사, 생명나눔실천본부 등 관련 기관을 방문해 3~5mL 정도 채혈하는 과정을 거친다.

문제는 HLA 검사 과정과 혈액 관리에 따르는 비용 때문에 연간 등록할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된다는 점이다.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자로 등록된 인원은 2012년 2만254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서서히 감소해 △2016년 1만6922명 △2017년 1만6900명 △2018년 1만6935명 △2019년 1만6931명으로 4년간 정체돼 있다. 조혈모세포 기증 관련 지원 예산도 연간 42억원 규모를 유지하는 수준이다.

복지부는 예산 편성 문제로 기증자를 더 받고 싶어도 한 해 정원 이상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올해 기증 희망자 등록 작업은 11월에 마무리됐다. 따라서 12월에 기증 희망자가 나타나도 3개월은 손쓸 방도가 없다. 복지부 관계자는 “정해진 예산 안에서 지원사업을 펼치다 보니 한계가 있다”며 “예산 증액은 꾸준히 논의하고 있다”고만 했다.

“한시가 급한데” 속타는 환자 가족들

한시가 급한 환자 가족들은 “등록 정원을 늘려달라”고 정부에 호소하고 있다. 매년 1만6000명 넘는 사람이 조혈모세포를 등록하고 있지만 이 중에서 적합 기증자를 찾기도 어렵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HLA 일치율은 형제자매 사이라도 25%, 타인의 경우 2만 분의 1 수준이다. 이 때문에 이식을 대기하는 환자들은 짧으면 수개월에서 수년간 수술을 기다려야 한다. 복지부에 따르면 골수·말초혈·제대혈 이식자들의 대기 시간은 평균 1682일로 집계됐다. 전체 대기자 수는 작년 기준 4528명이다.

이식 수술이 성사되는 건수도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다. 골수이식 수술은 2014년 94건에서 △2015년 67건 △2016년 67건 △2017년 45건 △2018년 37건으로 감소했다. 등록 정원이 제한된 데다 기증 등록자가 수술을 거부하거나 환자 상태가 악화돼 수술할 수 없게 되는 일도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등록자 나이가 55세를 넘기면 건강상 문제로 등록이 자동 취소된다.

이은영 한국백혈병환우회 사무처장은 “정부 홍보를 통해 기증 희망자가 단기적으로 늘어나기도 하지만 결국 이식 거부로 이어지는 비율이 상당하다”며 “정원 문제로 피해를 보는 환우가 없도록 관련 예산을 늘리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