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24일 국회 본회의에 전날 상정된 선거법 개정안을 두고 찬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이어갔다. 해당 안을 반대하는 자유한국당뿐만 아니라 찬성하는 더불어민주당까지 필리버스터 행렬에 동참했다. 정치권이 협상을 외면한 채 ‘여론전’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날 오전 6시23분 세 번째 필리버스터 주자로 나선 권성동 한국당 의원은 오전 11시18분까지 4시간55분 동안 발언을 이어갔다. 권 의원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가 폐지한 알바니아·레소토 등 국가 사례를 제시하며 “(이들 국가는) 전부 ‘위성 정당’을 만들었고 블랙코미디가 되니 한 번 하고 다 폐지했다”며 ‘4+1 협의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주도로 본회의에 상정된 선거법 개정안을 비판했다.
권 의원은 의장석에 앉아있는 문희상 국회의장을 쳐다보며 “정말로 한심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의장”이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한국당 의원들은 “사기 정권” “나쁜 놈들이야”라며 추임새를 넣었다. 권 의원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며 “잘한 게 뭔지 민주당 의원들 말해보세요”라고 말하자 강병원 민주당 의원이 “민생법안을 (한국당이) 통과시키면 된다”고 맞받아치며 언쟁이 오가기도 했다. 앞서 연단에 선 주호영 한국당 의원은 3시간59분, 김종민 민주당 의원은 4시간31분간 토론을 진행했다. 각 당 의원들은 조를 편성해 돌아가며 본회의장을 지켰다.
네 번째 주자로 나선 최인호 민주당 의원은 “지난 20대 총선에서 50%에 가까운 국민의 소중한 표가 사표가 됐다”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것은 한국 정치사에 큰 획을 긋는 일”이라고 선거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 의원의 발언 도중 한선교 한국당 의원이 “할 말 없으면 들어가라”고 말하자 최 의원이 “한번 해볼까요”라고 맞받아치면서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최 의원은 3시간40분간 발언했다. 최 의원 다음엔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집권 여당이 ‘찬성 필리버스터’에 나선 게 이례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필리버스터는 통상 소수 정당이 다수당의 일방적인 법안 처리를 막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다수파인 민주당이 필리버스터를 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한국당의 발목잡기식 문제 제기 방식이 ‘찬성 필리버스터’를 자초했다고 본다. 여야가 필리버스터를 앞세워 ‘여론전’에 나서면서 협상을 통해 갈등을 조정하는 대의 정치 기능이 사실상 실종됐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날 여야 지도부는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히며 서로를 압박했다.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문 의장을 직권남용과 권리행사 방해로 형사 고발하고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하겠다”며 “사퇴촉구 결의안도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한국당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도 청구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한 번 더 (한국당의) 의사진행 방해 행위가 재발하면 (관련 기관에) 사법처리를 요청하겠다”고 맞받았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