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아베신조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에 일본 자동차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내에서 곤두박질친 판매량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두 정상이 일단 만나야 한다는 게 영업 현장의 목소리다. 하지만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 일본 자동차 업계 기대감 '솔솔'
24일 오후 양국 정상은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회담을 갖고 징용 소송과 수출 규제 문제 등 양국 간 현안을 논의한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지난해 10월 한국대법원의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이후 양국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한 뒤 처음 열리는 정식 양자회담이다. 그 사이 일본은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를 단행했고 국내 소비자들은 일본 자동차를 비롯한 일본산 제품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였다.
불매 운동으로 직격탄을 맞은 일본 자동차 업계에서는 두 정상의 만남에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도요타코리아 관계자는 "큰 변화가 있을 거라고 보지는 않지만 첫 만남이기 때문에 국내보다 일본 본사의 기대감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시장 철수설이 나오기도 했던 혼다코리아도 마찬가지다. 이 업체 관계자는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지 않느냐"라고 되물은 뒤 "두 정상의 만남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한국닛산 관계자는 일단 지켜보겠다고 말하면서도 "만남은 잘된 일"이라고 짧게 답변했다. 혼다와 닛산은 한국 시장 철수는 없다며 일본 불매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 일본차 3사, 내년 사업 계획도 못 짜
일본 자동차 업계의 기대감이 커지는 이유는 현재 상황이 워낙 좋지 않아서다. 지난달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차 3사의 전체 판매량은 2357대로 전년동기대비 56.4% 줄었다. 자연스레 한국으로의 자동차 수출 금액도 크게 떨어졌다.
일본 재무성이 지난 18일 발표한 지난달 무역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한국 자동차 수출액은 15억6200만엔(한화 약 166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88.5% 감소했다. 자동차 수출 감소폭은 10월 70.7% 줄어든 것에 비해 더 커졌다.
일본차 3사는 2020년도 회계연도(2020년 4월∼2021년 3월)에 맞춘 사업계획도 아직 짜지 못하고 있다. 내년 신차 출시를 완전히 접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일단 일본 자동차 업계는 연식 변경 앞두고 있는 물량을 올해 안에 소진하기 위해 전력투구했다. 도요타코리아는 'RAV4' 가솔린 모델을 500만원 할인해 판매한다. 아발론 하이브리드는 300만원, 캠리 하이브리드와 캠리 가솔린 모델은 가격을 200만원씩 낮췄다.
혼다코리아는 연말까지 800대 한정으로 '어코드 터보' 모델 가격을 20% 할인 판매하고 한국닛산도 현금 구매 기준 '패스파인더 3.5 플래티넘' 구매 시 1000만원이 넘는 주유권 혜택을 제공한다. 렉서스코리아는 인기 모델인 'ES300h'에 100만~200만원가량 할인을 하고 있다.
◆ "큰 효과 없을 것…불매 운동 지속"
걱정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일 정상회담으로 갈등이 더 깊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일본 자동차 대리점의 한 딜러는 "두 정상이 만났다고 당장 판매량이 오르겠나"라며 "한·일 관계는 특수성 때문에 무너지는 건 빨라도 회복은 더디다. 큰 기대가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일본 아베총리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 23일 일본의 교도통신을 통해 "징용 소송과 관련해 나라와 나라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일본의 생각을 전하겠다"고 강조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징용 노동자 문제를 비롯한 한·일 간의 모든 현안에 대해 한국 측의 현명한 대응을 요구한다"며 기존 입장만 되풀이했다.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 겸임교수는 지난 17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이번 한일 갈등이 과거 우리가 겪었던 독도 분쟁보다 더 큰 영향을 줬다고 판단한다"며 "판매량 회복이 한일관계 회복기간과 궤를 같이한다고 보면 내년까지 큰 영향을 미치지 않겠는가"라고 내다봤다.
업계 관계자는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나누는 표면적인 대화보다 표정과 악수의 모습, 회담장의 분위기에 따라 일본차 업계들이 내년 사업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며 "그래도 무언가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긴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