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올 3월 내놓은 ‘장래인구추계’가 건네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태어나는 사람은 꾸준히 줄어드는 반면 노인 인구는 급격하게 늘어난다는 것이다. 소비시장 규모는 사람 수에 비례하기 마련. 당연히 노인 비즈니스는 커지고 청년 시장은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삼성 LG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국내외 대기업은 여전히 노년층보다는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 출생)의 마음을 잡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이 가정 내 구매 결정권을 갖고 있어서다.
돈을 가진 60~70대 부모들이 필요한 물품을 살 때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고 정보 검색에 능한 밀레니얼 세대 자녀들의 도움에 의존한다는 얘기다. 최신 소비 트렌드에 민감하고 각 제품의 장단점에 대한 비교 검색을 잘하는 ‘젊은 자녀’들의 조언이 부모들의 제품 선택에 결정타 역할을 한다는 것. 가족 모임을 위한 식당을 예약할 때도 마찬가지다. 발 빠른 기업들이 벌써부터 밀레니얼 세대의 뒤를 잇는 ‘Z세대’(1997~2012년 출생) 공략에 나선 것도 이런 트렌드를 읽었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최근 IBM기업가치연구소가 전 세계 13~21세 1만56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도 나타났다. 이들은 부모가 식음료(77%·복수응답), 가구(76%), 생활용품(73%), 여행상품(66%) 등을 구입할 때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고령화 시대가 와도 젊은 층부터 사로잡아야 한다”는 얘기가 산업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조영태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장은 “은퇴자 대열에 속속 합류하고 있는 1958~1960년생들은 가전제품 등을 구매할 때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사는 딸’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며 “기업들이 고령화 현상을 단순화해 ‘노심(老心) 잡기’에만 골몰하면 낭패를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유통업계는 최근 50~60대의 면세점 소비가 늘고 온라인 주문이 확대된 것도 ‘딸의 구매’로 해석한다. 부모의 해외여행이나 출장에 맞춰 자녀가 온라인으로 면세물품을 구매한 게 50~60대의 소비로 잘못 해석됐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건강이나 개인 취미 분야 등 노인들이 직접 관심을 갖는 분야를 제외하면 젊은 자녀 세대의 ‘입김’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