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부 입맛 따른 통계 왜곡 안 된다

입력 2019-12-23 18:29
수정 2019-12-24 00:17
통계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 중 통계를 거짓말의 하나라고 지적하는 말이 있다. 영국 총리를 지낸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이야기했다고 잘못 알려진 “세상에는 세 가지 거짓말이 있다. 그냥 거짓말, 터무니없는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는 것이다. 누가 이 얘기를 처음 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아무튼 이 말은 통계가 가진 힘과 그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통계는 숫자로 표현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어떤 사건의 발생 가능성이 숫자로 요약되면 말로 설명할 때보다 객관성이 높아 보이고 과학적으로 들린다. “내일 비가 올 가능성이 크다”보다 “내일 비가 올 확률이 70%에 달한다”고 하면 훨씬 더 과학적으로 들린다. 이렇게 과학적이라고 여겨지는 통계를 이용해 사람들의 기대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싶은 욕망은 정책 분야에서 특히 많이 불거진다.

최근 정부가 발표하는 통계에 대해 경제학자들이 부정적인 해석을 내놓는 것을 불편해하는 시각이 있다. 심지어 이를 ‘가짜뉴스’라고 공격하기도 한다. 이런 시각은 경제학자들의 부정적인 해석이 불순한 의도 때문이라고 여기는 데서 나오는 듯하다. 그러나 어느 경제학자가 의도적으로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불안감을 부각해 이득을 보려 할까? 장밋빛이 아닌 현재를 아름답게 보이도록 통계를 포장하고 해석해서 경제가 잘된다면 세상에 불경기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부정적인 현재 상황을 의미하는 통계가 나왔을 때 이에 대해 냉철한 판단을 내리고 제대로 대비하는 것이 올바른 대응책이 아닐까?

경제에서 통계가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거시경제는 개인들의 의사결정이 모여 구성되는데, 거시경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통계적 방법론이 아주 유용하다. 국민소득 혹은 실업률 같은 대부분의 경제 변수가 숫자로 표시되므로 통계는 경제 상황을 설명할 때 필수적이다. 경제 변수들은 인과관계가 있어 시차를 두고 규칙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많다. 재화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 기업은 증가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투자를 늘리고, 투자재를 생산하는 기업에서 고용이 늘어나 다시 재화에 대한 수요 증가로 이어지는 경기 회복의 순환구조다. 이에 따라 재화에 대한 수요 증가는 경기 회복을 전망하는 데 인용되곤 한다. 경제 통계는 이런 순환구조를 이용해 경제 상황을 전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과거에 관찰된 통계적 규칙성만을 이용해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 일반적인 자연과학 이론의 경우라면, 경제 전망에서는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한 통계에 더해 사람들의 기대라는 추가적 변수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앞서 설명한 경기순환에서 기업들은 현재 수요 증가를 넘어서는 미래의 지속적 수요 증가가 기대될 때 본격적인 투자를 하게 된다.

현재의 경제 통계가 좋아지면 미래에 대한 기대가 개선되는 측면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보다 앞으로 경제 환경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필요한데, 이는 경제통계만 좋아진다고 얻어지지 않는다. 경제 환경은 사람들이 어떤 의사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통계 말고도 미래의 시장 규율을 정하는 규제와 정부의 다양한 시장 정책이 중요한 요소다. 정부의 경제 정책이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거나 혹은 기업에 적대적이라면 재정정책 등을 써서 재화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켜도 투자로 연결되지 않는다. 경기 회복도 일어날 수 없다.

나아가 통계를 정부 입맛에 맞게 구성해 발표한다면 경제 변수 간 상관관계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 이런 통계에 대한 불신은 그야말로 경제 정책이 작동하는 기본 경로를 훼손시키므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사람들이 정부의 통계가 경제 상황을 객관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고 믿게 되면 그 다음에는 백약이 무효가 된다. 경기 상황을 묘사하는 데 유리한 숫자만 발표해 사람들이 제때 위험에 대비하지 못하면 더욱 더 커다란 문제가 야기된다. 통계 작성의 정직함은 일시적인 경기 회복을 위해 타협할 사항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