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인더박스 "취미가 무엇이건 주문만 하세요"

입력 2019-12-23 16:58
수정 2019-12-24 02:04
“취미가 뭐예요?” “….”

많은 사람이 여가시간에 스마트폰이나 TV를 들여다보며 소일한다.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조차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조유진 대표는 2016년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하비인더박스를 창업했다. 재료와 도구, 설명서까지 취미생활과 관련한 모든 것을 박스에 통째로 담아 배송하는 신개념 서비스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월 거래액 2억원 돌파를 앞두고 있다.


띵동! 1인분 취미 배송이요

하비인더박스에서 판매하는 DIY(do it yourself) 취미 박스는 무려 470여 개에 달한다.

비누 등 화장품 만들기, 컬러링북, 캘리그래피 등이 인기다. 따라하기 어렵지 않은 데다 완성품이 그럴듯하게 나와 재구매율이 높은 편이다. 태교용품 등 선물용으로도 각광받는다. 모든 제품은 1인분이다. ‘아크릴물감 컬러링북 세트’를 주문하면 아크릴물감 세트와 스케치북, 종이 팔레트, 붓 등이 상자에 담겨 배송된다. 설명서가 들어 있고 QR코드를 찍으면 동영상도 뜬다. 재료를 하나씩 구매할 필요가 없고 알아보는 시간까지 줄여주는 게 특징이다.

조 대표는 “처음엔 매달 취미를 하나씩 선정해 정기적으로 보내주는 ‘구독경제’ 형태로 시작했으나 예상보다 성장이 더뎠다”며 “전문가들의 노하우를 공유해 쉽게 따라할 수 있는 플랫폼 형태로 지난 4월 전환했다”고 밝혔다.

사업 모델을 바꾼 뒤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다양한 분야의 작가 100명과 협업해 핸드메이드 취미상품을 기획한다. 수공예 작가들의 판로 개척에도 도움을 준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화두가 되고 가심비(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도)까지 따지는 트렌드에 힘입어 하비인더박스는 매달 거래액을 갱신하고 있다. 조 대표는 “여가시간이 늘면서 사람들이 기왕이면 의미있고 성취를 느낄 수 있는 취미활동을 하고 싶어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생애주기 맞춘 건강한 놀이

단체주문 등 B2B(기업 간 거래) 사업은 전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상승세다. 초등학교의 방과후 학교에서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활용하는가 하면 노인복지관과 요양병원에선 어르신의 치매 방지를 위해 DIY 키트 주문이 늘었다.

최근 서울 남대문 코트야드메리어트호텔과 함께 투숙객이 직접 입욕제를 만드는 패키지 상품도 출시했다.

성균관대를 졸업한 뒤 대학교 교직원으로 일하던 조 대표는 안정적인 일상이 따분하게 느껴졌다. 세상에 없던 재미있는 걸 내놓고 싶었다. 퇴사한 뒤 친구와 첫 창업으로 ‘청춘만행’을 선보였다. 청춘이 1만원으로 할 수 있는 여가생활을 찾아주는 서비스였다. 하지만 막상 출시해보니 위치기반 서비스도 해야 하는 등 기술적인 문제가 많았다. 치열한 고민 끝에 여가생활을 즐기는 방법을 다르게 접근해 재창업한 게 지금의 하비인더박스다.

주 소비자층은 20~30대 여성이지만 성별과 연령대가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왕좌의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직접 만드는 키트를 최근 출시했는데 반응이 뜨거웠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취미 시장도 함께 커질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래서 오프라인 매장을 내고 수공예 작가들의 강의도 주선할 예정이다. 조 대표는 “취업과 결혼, 출산 등 생애주기 및 살면서 겪는 크고 작은 이벤트에 맞춰 취미상품을 출시할 계획”이라며 “건강한 놀이법을 먼저 제시하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