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부·장 히든챔피언 100社 키우자"

입력 2019-12-22 17:36
수정 2020-10-25 15:14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커패시터(일명 콘덴서)를 생산하는 뉴인텍은 일찌감치 친환경 자동차로 눈을 돌렸다. 하이브리드카용 커패시터 국산화에 성공한 이 회사는 전기차 수소차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가고 있다. 장기수 뉴인텍 대표는 “고부가가치 커패시터를 전기차와 수소차 업체에도 납품하면서 4년 만에 처음으로 영업흑자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저가 공세와 생산원가 상승 등으로 2014년 이후 성장 한계에 봉착한 국내 중소기업계가 고부가가치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주력 산업에 대한 납품과 범용제품 생산에 안주하던 국내 중소기업계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반도체, 자율주행차 등 고부가가치 소·부·장 생산업체로의 변신을 시도하는 중소기업이 크게 늘고 있다. 최근 중소벤처기업부가 시행한 ‘소·부·장 강소기업 100 사업’에 1064개 기업이 신청한 게 단적인 예다.

업계에서는 2012년 23개에 머물렀던 국내 ‘히든챔피언’(세계 시장 점유율 3위 이내 강소기업)이 5년 내 100개를 웃돌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첨단 소재와 부품 경쟁력은 아직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66%에 불과한 수준”이라며 “중소기업이 독자기술로 소재·부품·장비를 국산화하고 미래 먹거리 발굴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범용 제품 만드는 '붕어빵 中企' 한계…고부가 소재·부품·장비 기업 변신 중

다사다난했던 중소기업계에 최근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국내 중소기업 생태계는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내수 침체, 중국과의 가격경쟁 등 ‘사면초가’에 빠져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런 대내외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범용제품 위주의 중기 산업 구조를 고부가가치 부품과 소재, 장비 분야의 강소기업을 육성하는 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오히려 국내 소재·부품·장비 분야 중소기업이 대일(對日) 종속 구조에서 탈피해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도약할 기회를 맞게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둔화하는 제조업 성장세

국내 제조업의 생산 증가율은 2000~2010년 평균 9.5%에서 2010~2017년 2.4%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수출 증가율은 10.5%에서 2.8%로 하락했다. 제품 가치를 높이거나 수요 변화를 적극적으로 따라가는 제품 개발 노력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제조업의 근간을 이루는 중소기업계는 최근 몇 년간 최저임금이 급격히 상승하고, 주 52시간 근로제가 도입되면서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 경기침체로 일감이 줄고, 저가 공세의 중국과 경쟁하다 보니 이윤이 팍팍해졌다. 경기 부천의 한 금형업체 대표는 “일감이 크게 줄어든 데다 저가 수주경쟁까지 벌이다 보니 3년째 적자”라며 “노동생산성 향상과 인력 감축밖에 답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반도체 자동차 등 10대 산업의 수출과 생산 비중이 70%에 달한다. 산업 구조의 역동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국내 제조 중소기업의 40%가량은 대기업에 납품하는 범용제품 생산에 편중돼 있다. 10대 산업에 투입되는 소재·부품·장비 등 중간재의 국산화 비율이 54%에 불과한 게 국내 제조업의 현주소다. 올 들어 3분기까지 중소기업 수출액은 76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 줄었다. 중소기업의 사업 역량이 글로벌 수준에 못 미치고 대부분 범용제품에 쏠려 있기 때문이다.

김문겸 숭실대 교수는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제품에 치중하다 보니 인건비 절감에 매달리고 있다”며 “글로벌 가치 공급망에 진입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세계는 제조업 혁신 경쟁 중

주요 국가의 경제정책은 제조업 육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제조강국인 독일은 2012년 ‘인더스트리 4.0’을 천명했고, 중국은 2015년 ‘중국제조 2025’, 일본은 2017년 ‘신산업 구조비전’을 내세웠다. 미국도 지난해 ‘첨단제조업 리더십 발전 전략’을 통해 국토 전역에 제조 혁신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제조업 진흥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신소재 개발을 최우선 과제로 꼽는다. 미국은 ‘소재 게놈 이니셔티브’, 중국은 ‘첨단 신소재 개발전략’, 유럽연합(EU)은 ‘2020 그랜드챌린지 첨단소재 프로젝트’, 일본은 ‘원소전략과 차세대 구조재료 전략혁신 프로젝트’를 시행한다. EU의 핵심 국가인 독일은 수평적 협력 생태계를 구축해 산업경쟁력을 강화해왔다. 자동차업계는 벤츠 폭스바겐 등 완성차 메이커에 보쉬 지멘스 같은 부품·소재 기업이 파트너로서 협력하는 구조다. 보쉬는 해외 100여 개 자동차 업체에 부품을 공급하며 전체 매출의 79%를 해외에서 올릴 정도로 국내 의존도가 낮다.

미래 기반의 핵심기술에 집중해야

국내 중기 제조업을 혁신하기 위해 연구개발(R&D)을 통해 범용제품에서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산업생태계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장은 “제조업 전반에서 부가가치율을 끌어올리는 생산 구조 업그레이드가 필수”라며 “첨단 소재와 부품 등의 해외 의존도를 낮추고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기 위해 이 분야에 집중 투자해야 강소기업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라정주 파이터치연구원 원장도 “중소기업 산업생태계를 반도체, 자율주행차 등 미래 산업과 관련된 핵심기술 개발로 바꿔나가야 국내 제조업 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다”며 “이들 기업의 기술경쟁력 강화를 위해 R&D 투자를 크게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