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의 컬처insight] '시간여행자' 양준일의 비운, 그리고 재소환의 의미

입력 2019-12-20 13:46
수정 2019-12-20 14:08
‘시간여행자’ ‘20세기에 나타난 21세기형 천재’ ‘90년대 GD(빅뱅의 멤버 지드래곤)’….

화려한 수식어의 주인공은 가수 양준일이다. 그 수식어에 비해 누구였는지 기억이 언뜻 잘 나지 않는다. 그의 활동 기간이 매우 짧았기 때문이다. 1991년 데뷔해 1992년까지 활동했다. 이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30년 동안 대중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최근 이변이 일어났다. 다양한 수식어가 생겨났고, 그를 찾아달라는 요청이 빗발쳤다. 유튜브에서 과거 음악 방송을 틀어주는 채널을 보던 네티즌들이 양준일의 무대를 보고 폭발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1990년대 음악과 무대라고 상상할 수 없을만큼 세련된 모습에 열광했다. 현재 활동하던 가수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에서 활동한 것 같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천재, 영원히 잊혀질 뻔한 양준일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 6일 JTBC ‘슈가맨 3’에 출연해 대중 앞에 섰다. 20대였던 그는 50대가 돼 있었다. 그러나 등장부터 남달랐다. 잘 짜여진 안무가 아니라 자연스러우면서도 즉흥적으로 음악에 몸을 맡겨 탄성을 자아냈다. 지금 봐도 신선하고 파격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10대들도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약 7000명이던 팬카페 회원은 방송 후 4만명을 넘어섰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그는 팬들을 직접 만나기 위해 20일 다시 귀국했다. 대중은 천재의 잇따른 재등장에 열광하고 있다. 실시간 검색어엔 ‘환영해요 양준일’이 올라왔다.

재능이 넘치던 20대 청년을 무대에서 밀어낸 것은 틀에 박힌 시스템이었다. 미국 교포 출신인 그는 노래에 영어를 많이 넣었단 이유만으로 심의에 걸렸고, 라디오 방송에서도 징계를 받았다. 새로운 장르조차도 당시 시스템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양준일은 ‘리베카’ ‘가나다라마바사’란 노래로 한국에 처음 ‘뉴 잭 스윙’란 장르를 소개했다. 리듬 앤 블루스에 힙합을 접목한 음악이다. 하지만 당시 주류인 발라드와 트로트 음악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명 작곡·작사가들에게 곡은 받을 수도 없었다.

시스템의 제한이 대중의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일까. 한쪽으로 머리를 넘기고 셔츠를 살짝 풀어헤친 채 자유롭게 춤추는 그의 모습은 각종 매체의 비판을 받았고, 이어 고지식한 어른들로부터도 질타의 대상이 됐다. 무대에 오르면 돌이 날아오기도 했을 정도다. 그는 결국 “너 같은 사람이 한국에 있는 게 싫다”는 출입국관리속 직원으로부터 비자 갱신을 거부당하고, 한국을 떠나게 됐다.

비운의 양준일을 다시 소환한 것은 모순되게도 새로워진 시스템이다. ‘유튜브’라는 뉴미디어 플랫폼을 기반으로 대중들은 현재뿐 아니라 과거의 콘텐츠까지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됐다. 방송이란 거대 조직, 고착화된 틀 안에서 사라져버린 콘텐츠도 마음대로 끄집어낼 수 있게 됐다. 또 각 개인이 순간적으로 느끼는 벅찬 감정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즉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됐다. 그 반응들이 모여 30년 동안 보이지 않았던 천재를 소환하는 엄청난 화력이 만들어졌다. 결국 우리는 시스템으로 인해 억눌려 버린, 못다 피운 창작자의 열정을 개방된 시스템으로 발굴하고 ‘리부트(reboot·재시동)’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금도 어디선가 ‘제2의 양준일’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의 시스템으로도 놓치고 밀어내고 있는 또 다른 천재 말이다. 천재를 알아보고, 육성해 줄 수 있는 발전된 시스템과 대중의 안목.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문화를 찬란하게 꽃피우기 위한 필수 요건이 아닐까.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