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품 규제에 텀블러 사용 늘어가는데…카페 손님·직원 모두 '불편'

입력 2019-12-21 08:34
#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10평 남짓의 개인 카페를 운영하는 한모 씨(34)는 얼마 전 황당한 경험을 했다. 음료를 제조하고 있는데 한 손님이 몸을 쭉 뻗어 계산대 안쪽의 싱크대에서 자신의 텀블러를 씻기 시작한 것이다. 손님에게 "뭐하시는 거냐"라고 묻자 손님은 "텀블러가 더러워 미리 씻고 있는 중이었다"고 답했다. 한 씨는 "계산대 안쪽은 엄연히 직원들만 이용할 수 있는 구역인데 갑자기 물을 틀어 자신의 텀블러를 설거지를 하니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 서울 성동구의 한 프랜차이즈 카페를 방문한 박모 씨(30)도 텀블러로 인한 황당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빨대와 냅킨이 비치되어 있는 셀프바에 물을 뜨러 갔더니 한 손님이 정수기 앞에서 자신의 텀블러를 세척하고 있던 것. 박 씨는 "정수기 앞이 커피와 물로 더러워져 있더라"면서 "집에서 헹궈오거나 직원한테 부탁하지 왜 정수기 물로 텀블러를 씻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눈살을 찌푸렸다.

정부가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확대하는 등 친환경 정책을 강도 높게 펼치고 있지만 미흡한 인프라로 카페를 방문하는 손님들이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해 8월부터 실내 매장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했다. 소비자들은 대체재로 텀블러를 구매하기 시작했다. 락앤락에 따르면 올해 1~10월 기준 텀블러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증가했다. 코멕스산업의 올해 텀블러 매출도 지난해 8월 동기 대비 50% 증가했다.

정부는 2021년부터 일회용 플라스틱 컵뿐 아니라 종이컵 사용도 제한할 예정이다. 매장에서 머그잔 등에 담아 마시던 음료를 테이크아웃해 가져가려면 일회용 컵 사용에 따른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 텀블러 사용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텀블러 사용 편의성 개선을 위한 대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소비자는 물론 카페 직원들 사이에서는 카페에 텀블러를 만드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김모 씨(27)는 "한가한 시간에는 괜찮은데 점심시간에 텀블러를 씻어달라고 하면 당황스럽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에 마신 음료가 아메리카노나 티 종류면 그나마 괜찮은데, 우유가 들어간 음료거나 과일을 갈아 만든 음료면 잘 닦이지도 않는다"고 불편함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손님들이 직접 텀블러를 씻을 수 있는 시설이 마련되어 있으면 손님도 편하고 카페에서 일하는 직원도 편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업체 측에서는 텀블러 세척 시설 설치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더 크다. 비용 부담은 물론, 싱크대를 설치했을 때 다른 손님들이 불편해질 수 있다는 이유다. 한 카페 업계 관계자는 "싱크대를 설치하면 추가로 공간이 필요하고 비용도 든다"면서 "본사에서 비용 부담을 해준다고 하면 그나마 부담이 덜하겠지만, 각 점주가 설치를 해야 한다거나 소규모 개인 카페를 운영하는 사업자에게는 정말 비용 부담이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싱크대를 개방된 공간에 설치하면 물이 샐 수도 있고, 텀블러를 세척하다 다른 손님에게 물이 튈 수도 있다"며 싱크대 설치가 만능 해결책은 아니라고 말했다.

환경단체에서는 카페를 운영하는 사업자들이 일정 부분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김미화 자원순화사회연대 사무총장은 "커피나 음료를 팔아서 돈을 버는 건 카페 업주들"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돈을 버는 사람이 싱크대를 설치하는 정도의 투자는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만약 정부 차원에서 하라고 한다면 그건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하자는 것인데 그것보다는 돈을 버는 사람이 서비스 차원에서 제공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소비자들이 집에서 텀블러를 씻어서 다니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는 "친환경재질은 유리컵 또는 텀블러뿐"이라면서 "자연을 보호하려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집에서 텀블러를 씻어서 가지고 다니는 게 불편하더라도 조금 참아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미경 한경닷컴 기자 capit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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