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소득 창출' 아닌 '이전·분배'에 매몰된 정부, 어쩌려는 건가
결국 정부 쪽에서 ‘증세론’이 나왔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그제 발표한 ‘증세안’은 주목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복지확대 차원에서 세금을 더 걷자는 주장이다. 또 한 번 복지증세 논쟁을 예고한 셈이다. 국민 조세부담률을 4~5%포인트나 올리자는 것도 심상찮다. 경제여건을 감안할 때 충격이 적지 않을 수준이다. 인상 세목으로 법인세와 부가가치세가 지목됐다는 점에서 ‘준비된 증세론’으로 보인다.
정부가 증세로 눈 돌리기 전에 명심해야 할 게 있다. 소득 증대와 부의 창출이 아닌 ‘이전과 분배’ 위주 정책으로는 소득 창출도 분배 개선도 다 어렵다는 사실이다. 현 정부 들어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 구호 아래 재정 살포를 통한 소득이전과 최저임금 인상 등을 통한 분배정책에 주력해왔지만 소득 양극화는 오히려 심화된 사실이 통계청 소득조사 등으로 거듭 확인됐다.
일견 증세가 이런 문제를 해결해 줄 ‘마법’으로 비칠 수 있다. 오히려 악화된 분배구조, 더 줄어드는 저소득층 소득에 다급해진 정부 여당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하지만 복지충당용으로 나온 증세론은 시기도, 방법도 틀렸다. 세출 구조조정 없는 세율 올리기로는 세수 확대가 지속될 수도 없다. 무분별한 포퓰리즘에 따라 자가증식 단계에 들어선 복지 프로그램을 무리하게 꿰맞추기보다 복지 구조조정이 우선돼야 한다. 그 바탕에서 정부 씀씀이를 줄여나가는 세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법인세 등의 증세가 가뜩이나 취약한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은 다시 언급할 것도 못 된다. 최근 미국 일본 영국 등 선진국들이 법인세를 낮추며 기업 유치에 나서왔다. 법인세 인하 논의는 중국에서도 활발하다. 정부가 기업 활동을 옥죄는 판에 세 부담까지 커지면 누가 한국에서 투자하겠나. 삼성전자 중국 반도체공장 투자 확대, 현대자동차 인도네시아 공장 설립에 이어 엊그제는 바이오벤처 마크로젠이 규제 때문에 미국으로 본사를 옮기고 싶다는 큼직한 보도도 있었다.
소득을 창출하고, 세금도 내는 기업들이 사업을 접으면 무슨 재원으로 이전하고 분배할 것인가. 당위론을 내세운들 우리 수준에 버거우면 사회안전망도 유지될 수가 없다. 근로소득 증세 논의에서 ‘거위 깃털 살짝 뽑기’를 언급해 낭패 본 당국자의 사례를 돌아보면 소득세나 부가가치세 인상도 쉽지가 않다. 세수 확대는 파이 키우기, 경제 살리기라는 정석대로 가야 한다.
설사 보편복지로 간다 해도 보편증세가 맞고, 고(高)복지를 지향하자면 고부담이 맞다. 하지만 근로자의 절반가량이 비(非)과세 대상인 현실부터 개선해 보편부담이 되게 정부와 정치권이 적극 나서야 한다. 정부 여당은 512조원의 초팽창예산을 처리하면서 내용에서도 절차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남겼다. 증세는커녕 당장 내년부터 커져갈 적자국채 상환 방법부터 밝히는 게 순리다. 중장기 세수와 복지수요, 국가채무 관리가 근시안과 임시방편투성이다. 분배 확대가 아니라 소득과 일자리 창출의 길로 제대로 방향을 잡는 게 중요하다.《한국경제신문 12월 14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선진국들, 감세로 경제 살리기 나서
새 수익 창출되면 세금은 절로 나와
분배·이전보다 성장정책 우선돼야
세금은 국가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세금 납부는 모두에게 예외가 없다는 ‘국민개세주의’는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의무다. 세금의 기준, 특히 세율은 많은 개별 세법에 명시될 정도로 엄격히 다뤄진다. 세율이 소득세법, 부가가치세법, 법인세법 등 개별 법률에 명시된 것도 좁은 행정부 마음대로 세금을 올리고 내리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세율을 법률이 아니라 시행령 등 하위 법률에 담을 경우 대통령이 이끄는 행정부가 작위적으로 세금 부과를 늘리거나 줄이는 것을 막기 어려운 만큼 국민의 대표기구 국회가 지닌 고유권한인 법률 제정으로 정하게 한 것이다. 입법부가 법률을 제정하고 행정부는 그 법에 따라 집행하는 전통적 3권 분립 취지에 따른 것이다.
조세권은 그만큼 중요하다. 조세의 부과 징수는 반드시 의회(국회)가 정하는 법률에 의한다는 ‘조세법률주의’는 현대 민주주의의 요체이기도 하다.
반면 정부나 정치권력에는 세금 부과와 세율 조정이 언제나 유혹의 대상이다. 세금을 깎아주는 선심 정책도, 최근 부동산 관련 세금처럼 보복형 중과세도 집권에 매우 강력한 카드가 될 수 있다.
물론 모든 세금은 경기의 활성화 방편도 되고 때로는 과열 경기를 잡는 수단도 될 수 있기에 경제정책이나 경기대책으로도 중요한 영역이다. 최근 주요국이 일련의 감세 정책으로 경제살리기에 나서고, 그렇게 해외 투자가를 불러들이거나 국내 기업 이탈 막기에 나서면서 국가의 ‘조세 경쟁력’을 강화해가는 것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세금 징수를 확대하자면 경제가 잘 돌아가게 하는 게 정석이다. 사업이 잘되고, 투자가 활성화돼 돈이 돌고 새로 수익이 창출되면 세금도 따라서 나온다. 소득 창출과 투자 확대를 외치는 이유다. 이런 정상적 길을 외면하고 재정 퍼붓기 방식의 분배와 이전 정책은 지속가능하기가 어렵다. ‘공적이전소득’을 강화하려 해도 재원이 있어야 계속 이어갈 수 있다. 분배정책도 취지와 달리 경제 활력이나 떨어뜨리게 된다. 통계층의 가계소득조사를 보면 최저임금 올리기 등 분배정책이 강화됐지만 빈익빈(貧益貧)으로 소득의 양극화는 오히려 심화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선(善)한 의도가 오히려 지옥으로 이끈다는 격언을 떠올리게 한다. 길이 멀고 지난해 보여도 올바른 방향이어야 멀리까지 바로 갈 수 있다. 경제에서는 특히 그렇다. 그게 정치보다 경제가 어려운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