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동차업체 노동조합의 ‘파업병’이 또 도졌다. 기아자동차 노조는 18일부터 부분파업에 들어갔다. 사측과 임금 및 단체협약에 잠정 합의해 놓고는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부결되자 뜬금없이 파업에 돌입했다. 조합원들에게 뺨 맞고 엉뚱한 데 화풀이를 하는 꼴이다. 사측에 “알아서 추가 양보안을 내놓으라”는 우격다짐을 한 셈인데, 어느 모로나 비상식적이다.
기아차 노사의 잠정 합의안은 지난 9월 무분규로 타결된 현대자동차의 임단협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기아차 노조는 “현대차 수준보다 못하다”며 몽니를 부리고 있다. 노조원들이 생산성과 이익을 얼마나 더 높였는지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파업을 무기로 “더 내놓으라”는 억지 요구를 들이댄 것이다. 르노삼성자동차와 한국GM도 비슷한 모양새로 파업에 시동을 걸었다. 파업을 강행할 경우 물량 배정이 물 건너가고,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한데도 제몫 챙기기에만 혈안이다.
이들 노조가 걸핏하면 파업을 들고 나오는 것은 그렇게 해도 거의 불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파업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 노동관계 법제에 원인이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조합원 과반수 찬성만으로 사실상 ‘1년 내내 파업’이 가능할 정도로 파업요건이 선진국보다 훨씬 느슨하다.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주요 국가에선 사업장 내 파업이 불법이지만 한국은 생산 등 주요 시설 점거만 금지하고 있다.
노조엔 멋대로 파업을 벌일 수 있게 해주는 반면, 사측에는 마땅한 대응수단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미국 영국 일본 등 대부분 선진국은 사측에 파업 시 대체근로를 전면 허용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금지돼 있다. 사측이 가진 수단이라고는 직장폐쇄밖에 없다. 하지만 생산 차질과 기업 이미지 추락을 감수하며 직장폐쇄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노조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구조다. 노조에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노동법제는 ‘노조=사회적 약자’라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노동운동의 중심에 있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주요 구성원들은 대기업과 공기업에서 고액 연봉을 받고 있다. 민노총은 50여 개 정부 위원회에 참여해 막강한 정치 사회적 권력까지 행사하면서도 여전히 약자를 자처하고 있다.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우리나라의 노사 협력 순위는 141개국 중 130위였다. 노사 간 힘의 불균형이 세계에서 가장 낙후된 노사 관계를 낳고 있다. 세계에서 ‘파업하기 가장 좋은 나라’라는 말이 나온 지 오래인데, 정부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을 위해 해고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법 개정마저 추진하고 있다. ‘노조 파업 천국’을 완성하겠다는 것인가. 대체근로를 허용하는 등 노조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한시바삐 바로잡아야 철밥통 노조의 못된 파업병을 뜯어고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