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한국 경제는 올해보다는 나아지겠지만 미약한 회복에 그칠 것이란 진단이 나왔다. “기저 효과로 내년에 수출과 투자가 증가세로 돌아서지만 개선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 경제는 미국과 중국 경기의 영향을 크게 받는데, 두 나라 모두 내년 경제성장률이 올해보다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정부에 신산업 육성과 과감한 규제 완화 등 경제 활력을 높일 수 있는 정책 추진을 한목소리로 주문했다. 또 “성장 한계를 극복하고 미·중 교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신흥시장을 적극 개척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수출·투자 회복세 미약
19일 한국경제신문사 주최의 ‘2020 대내외 경기·금융시장 대예측 세미나’에 참석한 경제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내년에도 2.1~2.3% 성장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해(1.9~2.0%)보다 높지만 예년 수준을 밑도는 저성장이다. “대외 불확실성 완화와 정부 지출 확대 등에 힘입어 경제 지표가 올해보다 나아지겠지만 소비, 투자, 수출 모두 미약한 회복에 그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과 중국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는데 한국만 좋을 순 없다”며 “내년에 한국 성장률이 2.2%로 반등할 것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은 현실성이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조영삼 산업연구원 부원장은 “미국과 중국이 1단계 무역협상에 합의했지만 글로벌 통상 마찰이 끝났다고 보긴 어렵다”며 “한국 수출이 올해 9.8% 줄고 내년에도 2.5% 증가에 그칠 것”이라고 했다.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올해 415억달러에서 내년 387억달러로 감소할 것이란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내년 세계 경제는 신흥국을 중심으로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겠지만 미국, 중국, 일본 등이 모두 올해보다 성장률이 낮아져 한국 경제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IMF에 따르면 미국 경제 성장률은 올해 2.4%에서 내년 2.1%로, 중국은 6.1%에서 5.8%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중국 성장률 저하는 아직까지 중국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무역분쟁 영향 등으로 예기치 않은 경착륙 가능성이 있어 이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주택·건설 경기 하강 지속
국내 주택·건설 경기는 하강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규제가 수요와 공급을 모두 억누르는 가운데 글로벌 경기 침체라는 복병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진단이다.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은 “잇단 규제에 시장이 ‘거래절벽’ 수준의 침체에 빠져들고 있다”며 “매매 시장이 위축되고 전세 시장으로 수요가 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내년도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늘렸지만 건설 경기를 살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조 부원장은 “건설투자는 올해 3.8% 감소에 이어 내년에도 1.8%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산업 구조조정 시급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와 주식시장이 활력을 되찾기 위해선 기업 구조조정을 통해 내실을 키우고, 신산업을 육성하는 한편 신흥 수출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조 부원장은 “경쟁력이 저하된 부문은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유망 신산업을 키우는 데 총력을 다해야 한다”며 “제조와 서비스의 융합, 혁신 기업의 출현을 촉진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 정비, 규제 완화 등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상춘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은 “기존 세계 경제의 규범과 관행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뉴 애브노멀(new abnormal) 시대’가 되면서 자산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며 “이런 때일수록 정부가 일관된 경제·금융정책을 통해 시장에 명확한 신호를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재정과 통화정책을 통한 부양책은 말 그대로 경기 순환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고 결국 민간 시장을 어떻게 활성화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