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우의 월드사이언스]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나침반 북극'

입력 2019-12-20 11:01
수정 2020-01-02 13:48
지구에는 두 가지 북극이 있다. 하나는 자전축의 북쪽 끝에 있는 지리적 북극이다. 보통 북극이라 하면 대부분 이 지리적 북극을 얘기한다.

또 하나는 자기(磁氣)적 북극(자북극)이다. 나침반이 가리키는 북쪽 끝이다. 지리적 북극과 달리 자북극은 계속 움직인다. 자기적 남극(자남극)도 마찬가지다.

미국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현재의 자북극은 처음 관찰을 시작한 1831년부터 캐나다 북쪽에서 러시아 시베리아 방향으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다. 올해까지 188년 동안 약 2250㎞ 움직였다. 1년에 12㎞가량이다.

그런데 최근 자북극의 이동 속도가 이례적으로 빨라졌다. 그 이유를 밝히지 못해 과학자들은 적잖이 당황하고 있다.

NOAA에 따르면 자북극은 최근 수년간 연평균 55㎞ 속도로 이동했다. 시어런 베건 영국 지질조사국(BGS) 지구자기 연구원은 "1990년대 이후의 이동 속도는 적어도 지난 4세기 중 가장 빠르다"고 말했다.

이런 빠른 움직임 때문에 NOAA와 BGS의 과학자들이 5년마다 산출하는 세계자기장모델(WMM)도 크게 달라졌다. 2021년에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자북극 위치를 2020년 위치로 바꾼 것이다. WMM은 미 항공우주국(NASA)과 각국 군대는 물론 민간 위성항법장치(GPS)에서도 활용한다.

NASA와 NOAA 등의 과학자들은 땅 속에 묻혀 있는 철광석의 자성을 분석해 과거 지구 자기장의 변화를 추론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지구의 자북극과 자남극은 지난 8300만년 동안 183번 위치를 바꿨다.

이렇게 자북극과 자남극의 위치가 완전히 바뀌는 현상을 '지구 자기 역전'이라고 한다. 가장 최근의 지구 자기 역전은 약 77만년 전에 일어났다. 그 이전에는 자북극과 자남극의 위치가 지금과 반대였다는 얘기다. 자북극과 자남극의 위치가 지금과 같은 형태일 때를 '크론', 그 반대일 때를 '서브크론'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지구 자기 역전의 주기나 역전에 걸리는 시간은 일정하지가 않다. 가장 최근의 역전은 2만2000년에 걸쳐 일어났다. 하지만 그 직전의 역전은 불과 2000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또 직전 서브크론의 시기, 즉 자남극이 지리적 북극에, 자북극이 지리적 남극에 있던 기간도 12만년 밖에 되지 않았다. 바로 이전 크론의 시기 역시 16만년으로 상대적으로 짧았다.


지구 자기 역전의 이유나 주기 등이 여전히 미지의 영역에 있기 때문에 최근 자북극의 빠른 이동은 '곧 역전 현상이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을 낳기도 했다.

지구의 자기장은 태양풍 등 외부 영향을 차단해 지구 생태계를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지구 자기장이 흔들리면 방사선 등의 영향으로 '대멸종'이 나타난다는 예측도 있다. 지구 자기장 역전이 '종말론'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이유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자기장 역전이 적어도 1000년 이상 걸리기 때문에 인류가 순식간에 멸망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자기장 불안정에 충분히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얘기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