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쎈돌’ 이세돌 9단(36)이 ‘인간 바둑’의 허점을 드러냈다. NHN이 개발한 토종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한돌’과 맞바둑에선 초반 실수를 극복하지 못하고 아쉽게 졌다.
이세돌은 19일 서울 도곡동 바디프랜드 사옥에서 열린 ‘브레인마사지배 이세돌 vs 한돌’ 치수(置數·핸디캡) 고치기 3번기 제2국에서 122수 만에 불계패했다. 이날 경기는 호선(互先·맞바둑)으로 치러졌다. 치수 고치기는 국별 경기 결과에 따라 진 쪽이 핸디캡을 받는 대국을 말한다. 전날 두 점 접바둑으로 열린 제1국에서 이세돌이 승리하면서 2국은 이 룰에 따라 동등한 치수로 치러졌다.
제1국에서 의외의 허점을 드러낸 한돌은 반격에 성공해 인공지능 바둑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각인했다. 승부는 1승1패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세돌은 기본 대국료 1억5000만원과 1국 승리 수당 5000만원을 챙기고 21일 최종 3국이 열리는 자신의 고향 전남 신안으로 향한다. 한돌이 2국을 승리해 최종 3국 경기 방식은 다시 이세돌이 두 점을 까는 접바둑으로 둔다. 한돌은 1국과 똑같이 덤 7집 반을 받는다.
이세돌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해서 너무 쉽게 진 것이 아쉽다”며 “‘이세돌답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초반 실수로 판을 짜내기가 너무 어려웠다. 실망스러운 바둑을 보여드린 것 같아 너무 아쉽다”고 고개를 숙였다.
돌 가리기부터 불리한 시작
원래 2국은 이세돌의 흑번, 한돌의 백번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1국 승리 후 이세돌이 “어차피 호선이면 돌 가리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NHN이 이를 수용했다.
이번 대회는 6집 반을 덤으로 백에게 주는 한·일 바둑과 달리 백에게 7집 반을 주는 중국 룰을 따랐다. 바둑 국가대표 코치인 조인선 4단은 “한국 규칙과 달리 7집 반의 덤을 주는 중국 룰로 경기가 열리면 프로 기사들도 백을 선호한다”며 “일반적으로 동등한 실력을 지닌 기사가 중국 룰에 따라 경기했을 때 백의 승률이 57~58%로 올라간다고 본다. 확률로 승부를 계산하는 AI도 백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세돌과 한돌은 실리작전을 구사하며 ‘백중세’로 출발했다. 그러나 둘의 균형은 전날 1국처럼 얼마 가지 않아 무너졌다. 초반 우위를 점한 것은 한돌이었다. 한돌은 좌상귀 접전에서 이세돌의 실수를 놓치지 않고 집을 따냈다. ‘위기’를 직감한 이세돌이 하변으로 전장을 옮기며 적을 흔드는 ‘난전’ 전략을 가동했다. 그러나 유혹은 통하지 않았다. 한돌은 이세돌을 따라가지 않고 우상귀 흑 4점을 잡으며 일격을 가했다.
이세돌이 31수 실수에 이어 33수도 연이어 실수하자 67%였던 한돌의 승률은 46수째에 88%로 치솟았다. 50수를 넘어가면서 90%대를 가리키던 한돌의 승리 가능성은 경기 막판까지 꾸준히 90% 이상을 유지하며 이세돌을 압박했다.
수세에 몰린 이세돌은 ‘수비 바둑’을 버리고 자신의 장기인 ‘흔들기’를 본격화하며 반전을 노렸다. 승부처인 우하귀와 하변, 좌하귀, 중앙 등을 모두 찔러 봤다. 이세돌의 막판 흔들기에 해설진도 희망을 걸었으나 한돌은 차분하게 자신의 집을 지켰다. 중계 해설자로 나선 유창혁 9단은 “AI는 10집으로 이길 바둑도 1집반, 2집으로 이기는 성향이 자주 발견된다”며 “한돌이 이세돌의 공격에 동요하지 않고 물러나며 안전하게 경기했다. 이세돌이 오히려 생각이 많았다”고 말했다. ‘멘탈’에 따라 기량이 달라지는 인간 바둑의 허점을 지적한 것이다.
진검승부는 3국에서 결판
이세돌과 한돌의 승부는 이제 최종 3국에서 가려지게 됐다. 다시 접바둑으로 열리는 만큼 대회 시작 전과 달리 이세돌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한돌 개발자인 이창율 NHN AI개발 팀장은 “현실적으로 사흘 만에 한돌의 접바둑 경기력이 확 달라지진 못할 것”이라며 “최대한 잘 준비해 지난 한 달 반 가까이 학습한 실력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세돌 역시 한돌의 약점을 이용하는 ‘맥 빠지는 승부’를 펼치지는 않겠다는 각오다. 이세돌은 접바둑으로 열린 1국에서 수비적인 모습을 유지하며 기회가 올 때마다 한돌의 실수를 유도했다.
이세돌은 “1국에선 정말 이기는 것을 목적으로 뒀다”며 “3국에선 마지막 판인 만큼 (1국처럼 수비적으로) 두고 싶지는 않다. 지더라도 (공격적인) 내 스타일로 재미있게 둘 생각”이라고 말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