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전체 분석 기업들이 출구가 보이지 않는 ‘규제 터널’에 갇혔다. 소비자 의뢰 유전자검사(DTC) 항목을 확대하는 내용의 ‘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좀처럼 진척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불만이 업계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DTC 인증제 시범사업 참여기업도 네 곳으로 제한해 업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실증사업 시작한 업체 한 곳도 없어
최근 메디젠휴먼케어와 테라젠이텍스는 규제 샌드박스 실증특례 사업계획을 심의하는 공용기관임상심사위원회(IRB)로부터 내용을 수정·보완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지난 4월 메디젠휴먼케어와 테라젠이텍스는 탈모, 피부 등 12개 항목으로 제한된 DTC 항목을 한시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규제 샌드박스 대상에 선정됐다.
메디젠휴먼케어는 수도권에 거주하는 체육대생과 비만 환자 등 성인 3000명을 대상으로 근력, 악력, 지구력 등 한국인의 운동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 13개를 발굴하는 내용의 실증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사업계획을 처음 제출했다. 신동직 메디젠휴먼케어 대표는 “말이 보완이지 거의 실증사업을 하지 말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결과를 받았다”며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하는데 이를 입증하려고 실증사업을 하자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메디젠휴먼케어는 실증사업을 준비하는 데 수억원을 지출했다. 신 대표는 “수도권 대학과 병원에서 유전체 분석 알고리즘을 구축하려고 유전자 샘플을 확보해왔다”며 “이렇게 시간을 끌 거면 애초 규제 샌드박스를 왜 시작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올 상반기 마크로젠, 메디젠휴먼케어, 테라젠이텍스, 디엔에이링크 등 네 개 기업이 규제 샌드박스 대상에 선정됐지만 아직까지 실증사업을 시작한 곳은 없다. 업계에서는 “공용IRB의 심사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업체 관계자는 “과학적으로 완벽한 연구과제로만 보지 말고 새로운 헬스케어 시범사업이란 점을 고려하는 게 규제 샌드박스의 취지에 맞는다”고 했다.
DTC 인증제 12곳 중 4곳만 통과
DTC 항목 확대를 위한 인증제 도입도 논란을 낳고 있다.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국생위)는 18일 회의를 열어 DTC 인증제 시범사업 참여기업 12곳 가운데 마크로젠, 테라젠이텍스, 랩지노믹스, 이원다이애그노믹스 등 네 곳만 통과시켰다. 여덟 곳이 역량 부족 등을 이유로 탈락했다.
지난 2월부터 보건복지부가 시행 중인 DTC 인증제는 검사역량을 인정받은 업체에 한해 DTC 허용 항목을 12개에서 57개로 늘려주는 것이다. 국생위 관계자는 “검사기관의 운영 현황에 대한 현장평가와 검사의 정확도 평가에서 네 곳만 인증 수준의 검사역량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았다”고 설명했다.
이번 평가 결과에 대해 업계의 불만이 높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평가 기준을 놓고 말이 많았던 만큼 탈락한 업체들의 반발이 거셀 것”이라고 했다.
국생위는 DTC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라고 제안했다. 유전자 검사 결과에 대한 해석이 불완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소비자가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DTC 항목 확대 2년 후 검사 정확도 재검토, 주기적인 해석 일치도 평가와 소비자 만족도 조사, 개인정보 보호 방안 수립 등을 조건으로 2년간 임시로 DTC 항목을 확대할 것을 제안했다.
임유 기자 free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