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국제도시’ ‘현대도시’에서 멀어지게 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가 ‘아파트 35층 제한’ 규제다. 서울시의 도시기본계획인 ‘2030 서울플랜’에 담긴 획일 규제다. 이 조례는 서울 주택시장에서 헌법보다 무섭다. 층고 규제 해제는 끊이지 않는 민원이지만 요지부동이다.
시민들 궁금증은 ‘40층도, 30층도 아니고 왜 35층인가’일 것이다. 시는 “조망권·일조권 보호, 주변 저층과 조화를 위한 규제”라고 할 뿐, 그 기준이 35층인 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설명이 없다.
획일적인 숫자형 규제는 주택행정에 널려 있다. ‘12·16 집값대책’에 포함되면서 바로 위헌 논란을 일으킨 ‘15억원 초과주택 구입용 담보대출금지’도 그렇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주도했다는데, 왜 15억원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재산권 침해, 개인과 은행의 자율 거래를 원천 부정한 게 근본 문제지만, 최소한의 근거라도 제시하는 게 마땅하다.
고가주택 지정과 중과세 기준도 마찬가지다. 전체 주택수, 단순 및 가중 평균 가격, 연식, 대·중소도시 변수 등을 두루 반영해 합리적 기준을 제시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다분히 행정편의적이다. 조건에 조건을 달고 수시로 변하는 담보인정비율(LTV)이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기준도 ‘엿장수 마음대로’다. 주택규제가 관치금융과 만나면서 은행 창구에서는 복잡한 새 규정을 놓고 쩔쩔매는 코미디가 또 연출되고 있다.
그러면서 국민주택규모(85㎡, 25.7평) 같은 기준은 수십 년째 그대로다. 청약제도·금융·세제 등의 기준선인데 소득이나 가구원 수 변화를 반영 못하고 있다. 대출과 과세, 용적률 등에서는 전문가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수치 규제’가 변화무쌍한 반면 이런 기준은 경제성장도, 변한 사회상도 외면하고 있다.
‘숫자놀음 고무줄 규제’는 주택정책이나 금융행정에 국한된 게 아니다. ‘보호·진흥·육성’보다 ‘감시·감독·규제’가 많은 한국 행정 전반에 걸친 특성이다. 규제의 숫자 하나하나가 ‘악마가 숨은 디테일’이란 사실을 늘 경계해야 한다.
어떤 규제라도 명확한 법적 근거하에서, 과학적·통계적 기준에 기반해야 한다. 국제적 흐름도 살펴봐야 하는 시대다. 그런 게 선진 행정이다. 물론 시간과 노력, 행정 비용이 더 들 것이다. 보이지 않는 사회적 비용까지 감안하면 그래도 가야 할 길이다. 헌법보다 조례·지침이 더 무섭다는 말이 반복돼선 곤란하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