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엉뚱한 한 수…'한돌' 잡은 '쎈돌' 이세돌

입력 2019-12-18 16:26
수정 2019-12-19 01:46

“조금 허무하다.”

또 한 번 인공지능(AI)을 무너뜨린 ‘쎈돌’ 이세돌 9단(36)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는 18일 서울 도곡동 바디프랜드 사옥에서 열린 은퇴기념 대국 ‘바디프랜드 브레인마사지배 이세돌 vs 한돌’ 제1국에서 92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뒀다. 이세돌은 ‘치수(置數·핸디캡) 고치기’ 방식으로 열린 이번 제1국 승리로 기본 대국료 1억5000만원과 승리 수당 5000만원 등 2억원의 상금을 확보했다.

이세돌은 25년간의 프로 기사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2점을 깔고 경기했다. 덤 7집 반도 줬다. 그만큼 한돌의 우위를 인정했다. 한돌은 NHN이 개발한 ‘토종 바둑 AI’다. 2017년 출시해 꾸준히 데이터를 축적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신진서 9단, 박정환 9단 등 국내 최고수 5명과 ‘프로기사 TOP5 vs 한돌 빅매치’를 벌여 전승을 거뒀다. 또 지난 8월에 열린 세계인공지능 바둑대회에서 처음 참가해 3위를 기록했다.

첫 대국은 그러나 ‘단명국’으로 끝났다. 4시간30분을 넘길 것으로 예상됐지만 2시간13분 만에 한돌이 돌을 던졌다.

이세돌은 3귀를 차지하며 순조롭게 출발했다. 우변 대신 상변에 집을 마련했고 한돌은 우변 흑돌을 공격했다.

이세돌의 78수 후 반전이 일어났다. 공교롭게도 78수는 3년 전 이세돌이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1승을 따낼 때 뒀던 ‘신의 한 수’. 한돌은 자신이 잡히는 ‘장문’을 파악하지 못했고 허무하게 요석 3점을 내줬다. 해설을 맡은 유창혁 9단은 “한돌 수준에서는 나올 수 없는 어이없는 오류가 나왔다”고 짚었다.

알파고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아온 NHN 측은 뜻밖의 결과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NHN 측은 그러나 결과가 ‘버그’ 때문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NHN 관계자는 “한돌의 특별한 기술적 문제는 확인되지 않았다”며 “이세돌이 그만큼 멀리 보고 수를 뒀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한돌의 접바둑 학습기간은 두 달 안팎에 불과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세돌은 “78수는 프로라면 누구나 그렇게 두는 당연한 수였다”며 “한돌이 그렇게 한 게 너무 의외다. (남은 대국에서)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세돌은 19일 핸디캡 없이 두는 ‘호선(맞바둑)’으로 한돌과 제2국을 둔다. 3국은 21일에 열린다.

조희찬/윤희은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