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길의 경제산책] 집 부족하다는데 세금만 올리나

입력 2019-12-17 09:25
수정 2019-12-17 10:43
정부가 어제 예정에 없던 18번째 부동산 대책을 내놨습니다. 현 정부 들어 서울지역 아파트값이 평균 40% 넘게 급등했기 때문이죠. 집값 상승률은 ‘단군 이래 최고’를 기록했다는 노무현 정부를 곧 추월할 태세입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당정에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지요.

노무현 정부 때도 수시로 대책을 내놨지만 5년 집권기간 총 17번을 발표했을 뿐입니다. 정부 정책이 신뢰를 잃으면서 “통제 불능이 됐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경제 성장률이 노무현 정부 때의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는데도 부동산 수요가 오히려 커지는 건 이례적입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쓰지 않는 ‘거래 허가제’를 빼놓고선 웬만한 대책이 망라됐습니다. 새 아파트 분양가를 임의로 낮추고 대출을 받지 못하게 합니다. 주택 소유자의 세금을 대폭 올리는 한편 집을 매각하면 차익을 환수하지요. 부동산을 매입하면 자금 출처도 샅샅이 조사합니다. 모든 초점이 매수 심리(수요)를 통제하는 데 맞춰져 있지요.

특히 고가 주택이 타깃이 됐습니다. 올해 이미 한 차례 올렸던 종합부동산세율을 내년에 더 올린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죠. 우리나라 종부세는 좀 특이합니다. 전세계적으로 재산세는 지방세(각 지역의 주택 소유자에게 부과해 해당 지역에 사용하는 세금)인데 반해 우리나라 종부세는 국세이죠. 특정 지역에서 세금을 거둔 뒤 타 지역으로 내려보낸다는 의미입니다.

세율이 특히 높은 점도 다릅니다. 우선 한국의 재산세율은 0.1~0.4%이죠. 여기에 종부세율이 추가로 0.5~3.2% 붙습니다. 이번 12·16대책에 따라 종부세율은 0.6~4.0%(누진과세 방식)로 더욱 높아지게 됐습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엔 종부세가 없습니다. 모든 주택 소유자에게 재산세를 매길 뿐이지요. 미국에서 재산세율이 가장 높은 곳은 뉴욕·뉴저지입니다. 중간값(median property tax)이 1.89%에 달합니다. 반면 앨라배마나 루이지애나 등에선 재산세율이 0.2~0.3%로 낮습니다. 집값이 높기로 유명한 캘리포니아 재산세는 0.74%이구요.

평균적으로 미국의 재산세 부담이 우리보다 높은 건 사실이지만 취득세 및 양도세가 매우 적거나 없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또 미국 일부 주에선 처음 구입가격에 맞춰 재산세를 매기거나, 연평균 인상률을 2% 내로 묶기도 합니다.(우리나라 종부세액은 올해만 58% 넘게 인상됐지요.)

유럽 역시 재산세율이 천차만별입니다. 프랑스(1.70%) 영국(2.53%) 등은 높지만 독일(0.32%) 스위스(0.11%) 오스트리아(0.13%) 등은 낮습니다. 룩셈부르크의 경우 0.05%로 재산세를 거의 부과하지 않지요. 뉴욕이나 영국을 예로 들어 “외국 보유세율은 우리보다 훨씬 높다”고 주장하는 건 맞지 않습니다. 높은 곳도 있고 낮은 곳도 있습니다.

정부가 총망라했다는 12·16 부동산 대책에서 결정적으로 빠진 게 있습니다. 바로 공급 확대 정책입니다. 사실 집이 남아 돈다면 이런 대책을 내놓을 필요가 있을까요.

정부는 우리나라 주택보급률이 2008년 100%를 넘었다고 강조합니다. 현재 103.3%이니 거짓은 아닙니다. 그러나 경북(111.7%) 전남(111.3%) 충남(110.5%) 등에서 집이 남아돌 뿐입니다. 거주 선호도가 가장 높은 서울은 96.3%, 경기도는 98.3%로, 둘 다 100%를 밑돕니다. 주택이 필요한 곳은 서울인데 강원도에 집을 많이 지어봤자 별무소용이란 얘기입니다. 더구나 서울 핵심지역엔 노후주택이 많습니다.

부동산은 엄연히 자산입니다.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수요가 늘고 공급이 줄면 가격이 오릅니다. 어느 한 쪽만 기대선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17번에 달했던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그래서 실패했습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