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상장사 사외이사의 임기를 제한하고 정기 주주총회가 열리기 전 사업보고서 및 감사보고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한 상법 시행령 개정안 적용을 1년 유예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관행을 바꾸는 개정안을 당장 내년 정기 주총부터 적용할 경우 혼란이 불가피해 준비기간을 더 주겠다는 취지다.
법무부 관계자는 16일 “지난 11월 입법예고를 마친 상법 시행령 개정안 중 일부를 연내가 아니라 2021년부터 시행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주총 소집 전 사업보고서·감사보고서 제출을 의무화하고, 사외이사 임기를 최장 6년(계열사 포함 9년)으로 제한하는 조치 등은 유예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만 임원 후보자의 세금 체납 여부, 부실기업 경영 여부 등 세부 경력을 공개하는 방안은 예정대로 연내 시행될 예정이다. 현재 장관이 공석인 만큼 최종 결정은 신임 법무부 장관이 취임한 뒤 내려질 전망이다.
정부는 사외이사의 임기를 제한하면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춘 사외이사가 더욱 많아질 것이라며 상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까지 마쳤다. 이에 대해 기업들과 일부 학자는 700여 명에 달하는 사외이사가 한꺼번에 교체되는 혼란이 예상된다며 시행을 유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외이사 임기제한은 헌법상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주총 전 감사보고서 제출 의무화 방안에 대해서도 자본시장법과 외부감사법 등 상위법과 충돌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기업들이 3월 말 같은 날 동시에 주총을 하는 ‘슈퍼 주총데이’ 문제를 심화시키고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가 부실하게 작성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