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독일에 5세대(5G)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 사업에서 화웨이를 배제하지 말라고 압박하고 나섰다. 중국 시장에서 많이 팔리고 있는 독일 차에 대해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협박까지 곁들였다. 독일은 미·중 무역분쟁에 이어 화웨이 문제까지 겹쳐 골머리를 앓고 있다.
15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우컨 독일 주재 중국대사는 전날 독일 경제지 한델스블라트 주최 행사에서 “독일이 자국 시장에서 화웨이를 배제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뒷감당할 일이 있을 것”이라며 “이 경우 중국 정부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 대사는 이어 “지난해 중국에서 판매된 자동차 2800만 대 가운데 약 4분의 1이 독일차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 정부가 독일차에 대해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물었다. 폭스바겐, 벤츠 등 독일 차업체는 중국에서 합작법인을 세워 차를 생산·판매하고 있으며 외국 차업체 중에선 점유율이 가장 높다.
우 대사의 이번 발언은 독일에서 화웨이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나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14일 화웨이를 독일의 5G 사업에서 배제하도록 하는 법안의 입법이 독일 의회에서 초당적 지지를 받으며 추진되고 있는 사실을 보도했다. 해당 법안을 마련한 의원들은 “독일 정부는 ‘신뢰할 수 없는’ 5G 장비업체들을 배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지난 10월 화웨이를 자국의 5G 이동통신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 사업에서 배제하지 않겠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지만 의회에서는 이에 반대하는 의원이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독일 3대 이동통신사 중 한 곳인 텔레포니카가 화웨이를 통해 5G 인프라 구축에 나서겠다고 발표한 것이 법안 추진의 단초를 제공했다. 텔레포니카는 지난 12일 “화웨이와 5G 네트워크 장비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독일 주요 통신사가 화웨이의 5G 통신장비 사용을 공식 결정한 첫 사례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계약을 계기로 독일을 비롯한 유럽 주요국 시장에서 화웨이의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분석했다.
그동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화웨이 장비가 중국 당국의 스파이 활동에 이용될 수 있다며 영국 독일 호주 뉴질랜드 등 동맹국에 5G 사업에서 화웨이 장비를 배제할 것을 요구해왔다. 독일 주재 미국대사는 3월 독일 정부가 화웨이의 5G 사업 진출을 허용하면 기밀정보 공유를 제한하겠다는 통보 문건을 보내기도 했다.
외신들은 우 대사의 발언대로 중국이 독일차에 보복을 가한다면 독일의 충격은 상당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독일 경제가 최근 침체를 겪고 있는 것이 중국에서의 독일차 판매량 감소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많다. 중국은 지난해 28년 만에 처음으로 신차 판매량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그 영향으로 독일의 분기별 전 분기 대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지난해 1분기 1.2%에서 2분기 -0.2%로 하락했다. 독일 경제는 3분기에 GDP가 전 분기 대비 0.1% 증가하면서 간신히 기술적 침체를 면했다.
중국이 독일차에 안전성 문제 등을 제기해 판매가 급감한다면 완성차뿐만 아니라 부품업체 및 연관산업까지 타격을 받는다. 이 경우 중국에 대한 독일의 수출 자체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중국은 독일의 최대 교역국으로 지난해 독일은 931억유로(약 121조7600억원)어치를 중국에 수출했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